(1421)전국학련―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제47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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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보전학생회>
나는 학원내의 좌익발호와 그로 인한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모로 대응책을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조직은 조직으로, 이론은 이론으로 대항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
우선 운동선수들을 규합하기로 했다.
대체로 운동선수는 사고방식이 단순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성향이므로 학생조직에는 빼 놓을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입학연도로 보아 선배였고 체육활동을 많이해서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미 보전 운동선수들과는 거의 잘 아는 터였다. 운동부만 하더라도 숫적으로 이미 좌익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빠른 시일내에 대세를 뒤엎기 위해서는 질(?)을 중시해서 규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맨 먼저 욕심(?)을 낸 친구는 전병두(경기대학장·유도) 이규형(전국자동차조합연합회전무·유도)을 비롯해 이덕원(수상) 박준선(육상) 장익삼(축구) 김동흥(럭비) 박석규(권투)김유조(유도) 박철용(권투) 윤주영(전문공장관·권투) 황천성(문교부체육국장·권투)등.
이들 가운데에서도 덕장 전병두동지는 청주중학시절부터 일본에 학생대표로 출전해 어전시합을 벌인 학생장사며 지장 이규형동지도 중동시절부터 이름을 날린 유도선수. 윤주영은 공부도 잘했던 권투선수.
이들 운동부의 맹장들을 규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새로 생기기 시작한 「비어·홀」이나 빈대떡집에 어울려 다니기도 해야했다.
때로는 체육인으로서의 동지적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우리는 삼선교 나의 하숙집과 원지동 박석규군의 집을 번갈아 오가며 매일밤 비밀회의를 가졌다.
좌익학생들의 주도권을 뺏기위한 사전대책을 숙의했다.
12월20일께인가.
나는 좌익학생들이 즐겨쓰는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워 전교생이 모인 한자리에서 학생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지난날 풍문여고강당에서 조선학병동맹사건때 겪은 뼈아픈 경험이 있는지라 바로 그 전법으로 그들의 허를 찌를 셈이었다.
우리는 회의진행상 할 일을 미리 분담했다. 누가 먼저 발언하고 동의에 따른 재청은 누가한다는 등의 조직적 대책을 세웠다.
사회는 내가 보기로하고 표결방식은 기립, 의제는 긴급동의형식으로 준비위원장을 선출키로 했다.
나는 개회선언을 했다.
내가 사회를 맡을 때까지는 아무도 시비를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임시의장을 선출할 순간 거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김동흥 김병국 김원기 김용문 임경규등 나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이선배가 하시오』라고 소리치자 그제서야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좌익측에서 김연성 김용덕 주모 박모 이모 등이 『규칙이요, 규칙이요』라고 외치며 벌떼 같이 일어났다. 『그냥 하시오』『물러가라』는 엇갈린 고함소리가 교실을 뒤 흔들었다.
마침내는 주모·박모등을 앞세워 10여명이 의장석으로 뛰어나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그때 거구의 전병두군이 학생가운데서 일어났다. 『왜들 떠들어』―그러면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주군과 박군을 두팔로 하나씩 끌어 내렸다.
감히 누구도 대들지를 못했다. 힘센 장사인지라 힘으로 대결할 수 없었다. 다소 장내가 가라 앉을 때 『그러면 준비위원장을 선출하자』는 긴급동의를 받아들여 즉각 통과시켰다. 뒤이어 『이철승선배가 하시오』하는 소리를 받아 『이의 없소』라고 외치면서 그 자리에서 준비위원장을 발표해 버렸다.
자기들 수법을 그대로 쓸 줄은 상상도 못했던 좌익학생측으로서는 기습을 당한 셈이어서 어쩔줄을 몰랐다. 그날부터 학교는 동기방학으로 들어갔다.
그날밤 우리는 박석규군 집에서 망년회겸 자축회를 갖고 밤을 새웠다.
좌익이 판을 치던 학원안에서 우익학생이 맛본 최초의 승리였다. 그날의 일격은 훗날 반탁운동의 주도권을 잡게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내가 보전학생회준비위원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며칠후 청천벽력의 반탁소식을 듣고 민첩하게 보전학생회의 의사를 집약해서 반탁대오에 본연히 나설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각학교학생들과 반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조직적인 대응책으로 「반탁전국학련」을 결성하고 그 중앙위원장의 역합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보전학생회를 우익진영이 주도하고 있었던 것이 기본 이유가 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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