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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고교 이과반 역전 … 휘문고 문과반 9개서 4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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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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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교에 입학한 딸이 수학에 자신 있는 편이 아니라 내년에 문과를 택하려 했는데, 취업에 이공계가 훨씬 유리하다는 보도를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취업 잘되는 학과로 가는 게 우선 아닌가.”(이건호씨·45·경기도 고양시)

 “문과가 불리하다곤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진이 빠진다. 취업컨설팅 받는 것도 인문계 학과 출신뿐이다. 이공계 친구는 ‘대학원 가든 취직하든 고르면 된다’고 편하게 말하더라.”(서울 사립대 서어서문학과 재학생 조모씨·24)

 대졸 취업준비생이 가장 선호하는 삼성·현대자동차·SK·LG그룹의 지난해 하반기 신입공채 합격자의 80%가 이공계 출신이라는 본지 보도(3월 12일자 1면)에 대학가는 물론이고 일선 고교와 학부모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이런 현상이 4대 그룹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걸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학부모들은 당장 자녀 진로문제로 혼란에 빠졌다.

 고2 딸이 문과를 선택한 김성기(51·서울 성동구)씨는 “지금이라도 이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아이와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도 파급효과를 예상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학부모 7만6000여 명이 활동하는 교육카페 ‘국자인’에서 한 학부모는 “큰아이 입시를 치르며 문과로 대학 가기가 힘들다는 걸 많이 느꼈다”며 “취업까지 어렵다니 걱정”이라고 했다.

 대학가에선 인문계 학생들의 취업준비 양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동대 주병창 학생경력개발팀장은 “인문계 학과 출신은 눈높이를 조절하거나 저학년 때부터 특기를 살려 취업에 대비하는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중앙대 최재훈 인재개발센터 주임도 “인문계는 3~4학년이면 이미 늦다”며 “저학년 때부터 동문 CEO 특강이나 인사담당자 특강, 진로탐색 같은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인력 수급 미스매치의 원인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학부모들부터 “대학의 인력양성 체계가 이공계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사회 구조와 괴리돼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김명진(47·서울 서초구)씨는 “제조업체에서 경영이나 회계 등 필수 인력을 빼면 이공계 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인문계 위주인 대학 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대학 구조를 수술해야 할 필요성은 교수들도 인정했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 교수는 “대학이 인문학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사회가 이공계 인력을 원하면 해당 학과 정원을 늘렸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미 교수가 배정돼 있는 다른 학과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국어고 붐이 일었다”며 “중학교 때부터 외고를 준비한 학생이 많아진 것도 인문계 학과 과잉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서울 강남·서초·노원구 등 ‘교육 특구’나 자율고에선 이미 ‘이과 부활’ 현상이 뚜렷하다. 2010년 3학년 문과반이 9개였던 강남구 휘문고(자율고)는 올해 4개로 줄었다. 반면 이과반은 7개에서 10개로 늘었다. 서초구 세화고(자율고)도 올해 문과반이 4개인데, 2010년에 비해 3개 줄었다. 이과반은 6개에서 8개로 늘어 문과반보다 두 배나 많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교육 흐름에 발 빠른 강남 지역이나 자율고부터 이과 선호 현상이 수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점차 다른 곳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휘문고 신종찬 진학부장은 “중상위권 대학을 노리는 학생 사이에서 이과 선호도가 강하다”며 “이공계 출신 대기업 CEO가 느는 등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전했다. 세화고 주동식 교사는 “요즘은 문과 비율이 특히 높았던 여고에서도 이과반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윤석만·김기환·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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