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진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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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콕트」의 소설『무서운 아이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인생을 장난처럼 매우 위태롭게 산다. 그들에게는 이른바 상식이 없는 것이다. 미개의 신선한 맛을 풍기면서도 묘하게 악덕의 세계에서 더 생기를 찾는다.
이 주인공들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맺는다. 결국은 그들도 비속한 인생을 끝내 거부하지 못한 때문이다.
「슐레진저」미 국방장관을 다룬 기사 속에서 「슈테른」지는 그에게서 이런「콕토」의 소설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닉슨」정부에서 가장 연소한 장관이 되었던 그는 확실히 어른의 세계를 비웃는 무서운 어린이처럼 방약무인하다. 그는 「브리핑」중의 4성 장군에게 일갈과 냉소를 거침없이 퍼붓는다.
그는 상식적인 의예를 잘 지키지 않는다. 자기 하고싶은 말은 거침없이 해낸다. 그는 「키신저」국무장관에게도 감히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각료다.
그만큼 그는 자기에 대한 자신에 넘쳐있다. 「뉴스위크」지는 그를 『미국사상·가장 영악하고 훌륭 국방장관』이라 평하기도 했다.
당년 45세의 「슐레진저」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들만이 몰렸다는 「탠드」연구소출신이다. 그리고 또 10년 가까이 교직에 있던 경제학박사다. 동부출신이 많은 현「포드」정권 하에서는 「키신저」와 함께 매우 드문 서부출신의 「인텔리」다. 그러니 「비정한 지식인」이란 혹평도 받을만하다.
그러나 그의 비정은 사실은 인간보다도 현실에 대하여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그의 입장만은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닉슨」의 최후가 다가왔을 때의 일이다. 그가「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 「슐레진저」는 군대를 움직이게 할 명령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잘라 말했었다. 자기를 키워낸 「닉슨」을 등진 것이다. 그 대신 군부의 동요는 가라앉았다.
그는 어느 사이엔가「키신저」를 누를 만큼 큰 비중을「포드」정권에서 차지하고 있다. 「키신저」보다 날카롭게 현실을 보는 그의 비정한 눈을 「포드」대통령이 필요하게 된 때문이다.
『북괴의 침략이 있는 경우에는 핵사용도 불사하겠다. 』이렇게 그는 공언한바 있다. 극동의 평화에 미치는 한국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인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오늘 그 「슐레진저」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찾아온다. 그가 새로운 한국방위정책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문이 한반도의 남북 양쪽에 미칠 정치적·심리적 영향을 충분히 계산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정치란 계산된 사기예술이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란 정치가 아니다. 미국의 극동전략이 정치와 같을 수는 없다. 이런 것도 그는 물론 잘 알고 있을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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