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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석좌교수를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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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왕상한
비상임논설위원

교수만큼 스스로를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 교수들이 인정하는 게 석학이다. 석학의 사전적 의미는 학식이 많고 학문이 깊은 사람.

 국가를 불문하고 석좌교수는 학술 업적이 뛰어난 석학에 대한 예우와 존경을 표하는, 매우 명예로운 자리다. 연구와 강의가 본업인 교수들에게 석좌교수는 선망의 대상이다. 탁월한 연구업적을 쌓고 이를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 가운데 엄선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을 석좌교수로 임용한 대학은 일반 재정이 아닌 별도로 특별 재원을 마련해 교육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석좌교수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재정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도 대부분 석좌교수제를 운영하고 있다.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30명 가까운 이름을 석좌교수 명단에 올려놓은 대학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면면을 보면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학계 인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장차관을 지낸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나 주요 언론사 간부 출신이 많다. 전직 정치인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는 박사학위 논문마저 표절 시비가 제기된 인사도 있다. 심지어 형무소를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과자도 있다.

 현 정부에도 장관 등 고위직 공무원 중에 석좌교수 출신이 적지 않다.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도 석좌교수 출신이 있다. 어느 낯 두꺼운 정치인은 ‘세계적 석학’이란 명패를 걸고 전국을 돌며 대학생들을 상대로 토크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지금도 어느 대학은 ‘세계 최고 석학과의 만남’을 주제로 거창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지만 참석자 면면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제 학술대회는 고사하고 국내 학회에서조차 석좌교수라는 명함을 떳떳하게 내밀 수 있는 석좌교수가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석좌교수로 임용된 그 많은 우리나라 ‘석학’들은 어떤 논문을 몇 편이나 썼을까. 해당 학계에 얼마나 많은 학문적 기여를 했을까. 이들의 강의는 학생들로부터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학에서 특별 재원을 지원받아 진행한 연구는 무엇이고 그 성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들을 석좌교수로 임용한 대학들은 별도의 재원을 얼마나 마련해 교육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건 석좌교수로 임용한 절차와 기준이다.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없는 사람을 어떤 절차를 거쳐 석좌교수로 임용해 석학으로 칭하는 것일까.

세상에 교수처럼 좋은 직업은 없다. 남들은 사오정(45세 정년) 시대를 맞아 떨고 있을 때 교수는 65세까지 신분을 보장받는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누구도 쫓아낼 수 없고, 강의를 빼먹어도, 논문 한 편 쓰지 않아도 통장엔 매달 적지 않은 급여가 또박또박 들어온다. 연구실에 가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은 교수들도 사무실과 조교를 지원받는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받는 존경은 보너스….

 그러니 교수가 되려는 사람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주위를 보면 교수 명함이 말 그대로 넘쳐난다. 명예교수, 초빙교수, 특임교수, 객원교수, 겸임교수, 대우교수, 외래교수, 연구교수, 산학협력교수 등등. 세계 어디를 봐도 이처럼 많은 종류의 교수직을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리고 이제는 학계 최고의 명예인 석좌교수직까지 남발되고 있다.

 솔직하자. 대학이 교수직을 남발하는 건 로비가 목적이다. 석좌교수를 포함한 교수 임용절차는 내규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학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고위 인사들을 당당하게 영입할 수 있다. 이들도 좋은 직업을 얻었으니 보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수 아닌 교수들에겐 강의·연구가 아닌 ‘학교 발전’이 우선이고, 그래서 정부 예산과 기업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혈안이다. 혹여 재단과 학교에 가해지는 불이익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이들 석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까.

왕상한 비상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