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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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에 저마다 열을 올린다. 나는 다른일을 하는 체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쾌활한 성격의 4학년짜리 영호는 혼잣말로 『오늘은 우주왕자「빠삐」도 안봐. 숙제 안해 가면 우리 선생님한테 터져』한다. TV의 만화 영화라면 가리지 않는 영호가 숙제 때문에 TV도 안 본다기에「그래 숙제가 얼마나 많으니』하고 개입을 했다. 시험지2장에 앞뒤로 꽉 차게 국어100문제, 산수50문제, 사회40문제, 자연30문제, 기타 음악·미술·실과 각10문제씩 해 오랬단다. 숙제를 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를 어떻게 내느냐고 울상이다.
하도 딱해 산수책을 뒤적여가며 산수문제를 내어주었다.
『그래 숙제 안해가면 선생님한테 매맞니?』『그럼요. 매맞고 반성문 쓰고 다음날 엄마 데리고 오래요.』『그러면 숙제 해가면 될거아냐.』『그래도 맞아요.』『숙제를 해갔는데 왜 맞니?』「글씨 잘 못쓰면 잘 못썼다고 맞고 글씨를 깨끗이 썼으면 숙제한 문제중에 몇 개 물어봐서 틀리면 틀린다고 또 맞아요.』영호는 『나 내일 학교 가지 말까?』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학교를 안 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우리 선생님이 숙제 안 해오면 학교오지 말랬어요.』그저께 숙제가 너무 많아 못다 해가 머리를 두대 맞았다면서 아이들하고 장난하다 머리를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까무러치길래 머리밑을 만져보았더니 머리밑에 밤톨만한 혹이 났다.
어린이에게 강제적인 숙제가 얼마만한 효과가 있을까. 숙제도 청소도 자발적으로 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가정에선 서너명의 어린이도 다루기 힘든데 자그마치 60∼70명의 어린이를 다스리자면 매가 아니면 별집같은 소란스러움이 다스려질 도리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 개개인의 인격을 중시하는, 그리하여 마음속으로부터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그러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희경 (대전시태평동504의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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