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학연<제47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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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45년8월15일 세계사가 새로이 급회전하고 우리 민족의 운명이 새로이 개벽되던 날.
우리들은 만담을 들을 조그만 기쁨으로 이날을 맞았다.
유명한 만담가인「야나기야·깅고로」(유옥금오낭)의 위문공연을 관람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삭막한 병영생활에 만담을 듣는 즐거움은 컸다. 그래선지 부대는 아침부터 술렁였다.
그러나 상오 10시가 좀 지나자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12시정각 전 병력은 빠짐없이 연대본부 앞에 집합하라고했다.
우리는 잠시 긴장했지만 전황페하의 특별방송이라는 말에안심했다.
이윽고 12시, 전원이 부동자세로 집합해서 천황폐하의 특별방송을 들었다.
그러나 「라디오」잡음속에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가끔 들릴뿐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때 중부군사령부와 육군측이 전파방해를 했다).
방송이 끝나자 중대장은 『송구스럽게도 천황폐하께서 장병들은 일층 분발하라는 격려의말씀을하셨다』 고 주석을 달았다.우리는 으례 그러려니 생각했다.
우리는 빨리 점심을 먹고 만담을 듣고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숲속에 가설된 임시무대에는 인근부대의전장병이 동원됐다.
「야나기야·깅그로」는과연만담의 대가답게 약 2시간에 걸쳐 우리를 마음껏 웃겼다. 배꼽이 빠질정도로 웃는다는 것을 나는 이때 체험했다.
하오4시쯤 되었을까 우리 모두 하산해서 부대로 돌아오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치는 일본민간인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촌막이 이상스럽게 조용하고 부대안도 고요하기만 했다.
내무반에 들어오니 천황이 항복했다는 말이 오가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을뿐 아니라 누가 들을까 겁이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부대가 뒤숭숭해지더니 느닷없는 고함소리와 통곡소리가 났다.
빨리 뛰어나가보니 엉엉 소리내며 우는 장교가 있는가 하면 숲속으로 뛰어가 일본도로 나무를 마구 후려치는 하사관이 있고 악을 쓰는 사병도 나타났다. 울고 찍고 발을 구르는 등 난리가 났다.
나는 순간 「올것이 왔구나」하는 직감을 느꼈다. 조선학병들은 서로 눈짓으로 한데 모였다. 그러나 숨울 죽이고 일본장병들의 광폭한 행태만 주시했다.
서슬퍼런 칼날이 무슨 일을저지를지 몰랐다. 이윽고 비상나팔이 불렸다. 연대병력전원이 식당에 집합했다.
부대장은 충혈된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천황이 무조건 항복한다고 방송하였지만 아직 정식명령이 없다. 별명이 있을때까지 우리 중부군 관할부대는 끝까지 항쟁한다』. 그리고는 『일본군에게 항복이란 있을수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전부대를 산속에 파놓은 대피소로 이동시켰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차하면 일본도가 내려칠 판국이라 아무말 못하고 따라 나섰다.
우리는 또다시 말「구루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쳐갔다. 결국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한다는 허황된 꿈도 일본국민의 뜻이 아니라 한줌밖에 안되는 몇몇 군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죄악인것 같았다.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해방」「독립」「생활」 이란 말만 되뇌어 보아도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나는 사리를 분간할만한 일본인 학병에게 『천황의 말을듣지 않으면 불충이 아니냐』 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는 독기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볼뿐 대답을 안했다.
피가 마르는 순간이 계속됐다. 어떻게된 일인지 날이 밝자 하산명령이 내렸다. 다소간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해방감을 맛본것은 그다음날 8월15일 아침이었다. 「조선학벙 전원 집합!」 이런 시달에 따라 대략 20명정도의 우리학병들은 연대본부앞에 2열로 단정히 섰다.
『귀관들에게 무기귀향을 명한다…』 연대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무기귀향?」나는 해산되는 줄알았더니 연대장은「무기귀향」이라는 말을 썼다. 필시 집에갔다 다시오라는 뜻이리라.
「귀향」과 「해산」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보며 우리는 계속 부동자세를 취했다. 속을 떠보기 위한 수작인것도 같고 무슨 날벼락을 내리기위한 신호인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에게 독립선언문이었음이 곧 확인됐다.
조선학병들은 8월19일까지「하까다」(박다)에 도착하면 귀향선이 있을 것이라면서 6개월분의 월급과 식량을 주었다.
나는 「항고」(반합) 에 쌀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무기귀향,무기귀향」을 몇번인가 되뇌었다. 그리고는 부대를 나섰다. 부대본부 일장기는 아직 휘날리고 있었다. 파르륵 떨면서 휘날리는 일장기는 내가 일본에서 마지막 본 일장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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