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진 국제지수 사정|광범한 현금차관도입 허용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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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단기성 차관의 경우뿐 아니라 중장기 차관의 경우에도 이제까지 적극 억제해 온 현금차관의 도입을 광범하게 허용키로 함으로써 외자도입 문호를 더욱 넓게 개방했다.
이제까지도 현금차관이 법적으로 금지됐던 것은 아니지만 외자도입정책의 운용 과정에서 현금을 들여오는 것을 「터부」시 했던 것은 내자 조달용 현금차관이 통화증발을 일으켜 국내 안정 기조를 해친다는 점과 국제 금리가 국내 금리보다 낮은 여건 아래서는 현금차관도입 그 자체가 도입 주체에 이차 이득을 부여하는 특혜가 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빚어 왔기 때문이었다.
또 현금차관에는 으례 사용 목적·도입 조건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붙게 마련이지만 일단 들여온 자금 사용을 일일이 규제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므로 목적외 유용 등 숱한 문제점을 드러냈던 것이 과거에 겪은 경험이었다.
현금 차관이 이처럼 여러 가지 부작용의 소지를 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가 문호를 개방, 현금 차관의 도입을 광범하게 허용키로 한 것은 그 만큼 우리의 국제수지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의 수출목표를 60억「달러」로 잡았지만 상반기 중 수출 실적은 21억5천7백20만「달러」로 연간 목표의 35.9%에 그쳤으며 7월말 현재로 수출 실적은 26억2천8백51만「달러」로 연간 목표의 48.3%에 그치는 부진한 실적을 못 면하고 있다.
수출 실적이 예상외로 부진하자 정부는 국제수지 관리방안을 새로 마련, 연간 수출가능액을 목표보다 8억「달러」 감소한 52억「달러」로 전제하고 이에 따른 외환수급 조절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우선 8억「달러」 수출 감소에 따른 국제수지 적자폭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 수입을 당초 목표 72억「달러」(FOB)에서 67억「달러」로 5억「달러」를 줄이고 수출 감소에 따른 적자 증가폭 3억「달러」를 외자 도입으로 메우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당초 장기자본 도입목표를 12억5천만「달러」로 잡았던 것인데 이처럼 수출 부진에 따른 외환 부족으로 장기자본 도입목표를 3억2천6백만「달러」를 늘려 15억7천6백만「달러」를 도입키로 했으며 여기에 단기 자본도 목표액 3억8천1백만「달러」까지 합하면 19억5천7백만「달러」를 들여와야 한다는 계산이 된다.
한편 정부의 외자도입 실적은 지난번 남덕우 기획원장관이 IECOK(대한 국제경제협의회)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한 자리에서 13억「달러」의 외자도입이 확보돼 있다고 밝힌 정도다.
말하자면 외자 수요는 엄청나게 늘었는데 도입 실적은 원만치 못하다는 얘기인데 정부가 이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현금차관 도입을 허용키로 한 것은 이 같은 어려운 국제수지 사정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경제기획원 관계자들이 현금차관도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현금 차관이라도 주겠다는 곳만 많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현재 현금차관을 받아들인 우리의 입장은 과거 현금차관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조건 반사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현금차관 허용은 과거와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보완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당국에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물자 차관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왔고 물자 차관을 원자재로 가공하는데 필요한 2∼3개월의 시차만 제외하면 사실상 현금 차관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새삼스럽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현금차관 허용방침을 합리화하고 있다.
또 이차 특혜문제도 과거와는 달리 국내 금리(15.5%)와 국제 금리(7.5∼8%)와의 격차가 심하지 않으며 체제 정비로 사후 관리도 용이하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물가가 불안정한 우리 현실에서 현금 차관에 따른 통화 증발과 그에 따른 안정 유지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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