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승객 휴대폰 연결음 울리다 끊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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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남중국해에서 중국 구조팀이 실종 여객기 잔해일 가능성이 있는 물체를 수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까지 해당 기체의 것으로 확인된 잔해는 찾지 못했다. [신화=뉴시스]

239명을 태우고 사라진 말레이시아 여객기의 행방이 나흘째 미궁에 빠졌다. 사람들이 여객기 실종을 다룬 미국 드라마 ‘로스트’나 버뮤다 삼각지대를 거론하는 등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상상력을 발휘하는 지경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는 “27년째 비행기를 몰아왔지만 이처럼 큰 기체가 순식간에 레이더에서 사라진 후 잔해조차 찾을 수 없다는 건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매체들은 몇몇 사실에 근거해 갖가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테러다. ‘중국열사단’이라 자칭한 단체는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e메일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테러집단이 기체 안의 모든 무선통신을 차단한 채 모처에 착륙시켰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미국 인터내셔널 비즈니스타임스는 사고 후 일부 탑승객의 가족들이 탑승객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는데 연결음이 몇 차례 울리다가 끊어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전화번호는 조사 당국에 넘겨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관제 당국과 군 등에서 레이더망을 가동해 비행기를 추적했을 텐데 스텔스 기능이 없는 민항기가 이런 추적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는 이유다. 또 대형 여객기가 착륙하려면 상당히 긴 활주로 등 시설이 필요하며 각국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은신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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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가설은 폭발 등으로 인한 공중분해다. 여객기가 순식간에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점이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로이터 통신은 사고 추정 지점 인근에서 좀처럼 잔해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3만5000피트(1만668m) 정도의 고공에서 기체가 분해돼 파편이 아주 넓은 지역으로 흩어졌을 가능성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제기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 스마트(항공공학)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는 “매우 드문 경우가 되겠지만 공기역학적 문제가 생겨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기체에 감압이 발생하면 날개와 기체가 해체될 수 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하지만 기체가 해체됐다고 해서 잔해까지 관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 역시 의문이다. 장동철 국토부 항행안전팀장은 “굉장히 큰 위력의 폭발로 기체가 거의 가루가 되다시피 한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로 큰 비행기를 산산조각 낼 만한 폭탄을 싣고 타긴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비행기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영해 경계를 지나면서 일시적으로 양국 모두의 레이더망을 벗어났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는 베트남의 정글이나 강에 추락했을 경우다. 실종 직후 말레이시아 공군은 항공기가 항로를 벗어나 방향을 바꾸려 했던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렇다면 토쭈섬 등 베트남 남서부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종 시각 항공기에 충분한 양의 연료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체 상태가 어떠했든 최소한 기존 수색 영역을 벗어났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자살이나 하이재킹을 목적으로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다. 이 가설은 기체 내 블랙박스를 수거해 당시 기내 상황을 파악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 1997년 인도네시아 실크에어 항공기 추락과 99년 뉴욕발 이집트 항공기 추락 등이 조종사가 고의로 일으킨 사건인 것을 보면 고의 사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외에도 사고 원인을 궁금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비행 경력 15년에 사고 기종인 보잉777만 10년을 몬 국내 항공사의 또 다른 기장은 “비행기가 자신의 상태를 항공사에 전송하는 ACARS 장비와 신호로 자신의 위치를 주위에 알리는 ADS-B 장비가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상당히 이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거대한 비행기가 추락했다면 언젠가는 찾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58년 제트엔진 시대가 도래한 이후 영원히 실종된 항공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도 대부분 규명됐다. 2009년 대서양에서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은 실종 5일 만에 첫 잔해가 발견됐고 동체는 2년 후에야 드러났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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