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후퇴'라는 두 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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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8강전> 
○·스웨 9단 ●·박정환 9단

제14보(194~205)=‘승리’란 말은 얼마나 좋은가요. 동시에 ‘후퇴’란 말은 얼마나 싫은가요. 지금 박정환 9단이 그렇습니다. 승리를 지키려면 후퇴해야 합니다. 그러나 후퇴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몸을 비틀던 박정환은 끝내 빈틈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바로 전보의 흑▲인데요. 박정환은 이 수를 떠올리며 두고 두고 아파했을 겁니다.

 바둑은 좌변에서 수가 나지 않으면 흑승입니다. 박정환 9단이 전보 흑▲로 두텁게 지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지요. 하나 이 수는 부족했습니다. 196, 198로 강경하게 저항해 오니 맛이 나빠 괴롭습니다. 그렇다면 흑은 어떻게 지키는 게 최선이었을까요. ‘참고도1’ 흑1이 가장 확실했습니다. 한데 박정환은 이 노골적인 후퇴가 조금 부끄러웠던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갈등이 일어났고 그래서 등장한 게 흑▲의 절충안이었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할 스웨 9단에게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지금이라도 흑은 ‘참고도2’처럼 물러서야 했습니다. ‘참고도1’에 비하면 많이 손해지만 미세하나마 이기는 바둑이었습니다. 하나 거듭 말하지만 승부사에게 ‘후퇴’는 매우 힘든 일이지요. 박정환 9단이 폭발하듯 199로 끊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렇게 물러서면 어차피 진다고 봤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부근의 박정환은 명분과 현실 속에서 심리적인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99를 본 스웨 9단은 200~204까지 수를 내기 시작했습니다.(205-이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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