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12) 윰메르스탄 초등학교와 사르네락손 중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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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교육은 한국 안에서는 항상 지탄의 대상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는 스포츠계가 아닌 교육에 적용하면 딱 들어맞는다고들 한다. 성적이라는 잣대 하나로 아이들을 줄세우고, 1등 외에는 모두 패자로 만드는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학교라고 손가락질한다. 학교 폭력, 왕따 등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근본 원인이 공교육에 있다고 혀를 찬다.

그 대척점에 핀란드가 있다. “한 사람이 열걸음 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을 걷는 게 의미있다”고 가르친단다. 우리는 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았지만, 핀란드는 급식뿐 아니라 교재비에 대학 학비까지 공짜다. 어떤 학부모는 ‘성적 1등’보다 아이가 평생 즐길거리를 선물하기 위한 ‘취미 사교육’에 더 관심을 쏟는다. 중요한 건 이렇게 하는데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세계 1위를 놓치지 않는단 사실이다.

비결이 뭘까. 핀란드 공립학교에 세 자녀를 보낸 이보영(47)씨는 “모두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꿈꾸면서 실천하지 않는 방식이, 핀란드에선 현실로 구현돼 있다”며 “이상을 현실로 바꾸려는 노력이 핀란드 교육의 힘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다음은 15년째 핀란드에 살고 있는 이씨가 보내온 교육 이야기다.

미국 교육경제학자 루트 거 워스만과 에릭 하누섹이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50년간 각국 학생의 교육 수준을 동일한 기준으로 재산출해 그린 그래픽. 한국은 급격한 상승과 하강 곡선을 보이는 반면, 핀란드는 거의 밑바닥에서 1등으로 뛰어올랐다.

핀란드 학교는 99%가 공립이고 사립은 1%에 불과하다. 공립은 중학교까지 모든 게 공짜다. 학비는 물론 급식비·학용품비·교재비까지 단 한푼도 내지 않는다. 사립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정부에서 80% 정도 지원해주니, 제아무리 비싼 학교라도 학부모 부담이 연 1000유로(한화 1500만원)를 넘지 않는다.

우수한 사립학교를 저렴한 가격에 보낼 수 있다면 너도나도 사립학교를 찾을 것 같지만, 핀란드는 공립학교가 더 인기다. 사립학교는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자녀가 주로 다닌다. 아니면 특정 종교적 색채 속에서 교육하고 싶은 이들 정도다.

공립학교 인기가 높은 건 단순히 공짜여서가 아니다. 학교 시설이나 교사 수준이 사립학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아이 셋을 핀란드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가장 놀랐던 건 교사의 열정이었다. 첫째가 7학년(한국 중1), 둘째가 초6, 막내가 초4 학년인데, 지금껏 만난 교사 중에 “이 사람은 별로”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핀란드엔 좋은 교사와 더 좋은 교사가 있을 뿐이다.

 사제(師弟) 관계가 엄격한 한국과 달리 핀란드 교사는 친근하고 헌신적이다. 학생들은 교장부터 평교사까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하이디·애나 등 이름을 부른다. 교사는 매일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부모에게 자필 편지를 써서 보낸다. 아이와의 관계뿐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다정하게 대하는 거다. 학생은 교사와 친하다고 해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진 않는다. 교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바로 학생들의 장래희망이다.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바로 교사다.

물론 한국 청소년 사이에서도 교사가 인기 직업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유가 다르다. 한국에선 교사의 사회적 지위와 연봉이 높은 데다 안정적인 직장이기 때문이라면, 핀란드 학생은 전혀 다른 이유를 댄다. “왜 교사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어린 시절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가르치는 일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다.

 핀란드에선 교사되기가 매우 힘들지만 보수는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교사는 무조건 석사 학위 이상자만 가능하다. 또 교대나 사대는 지원자가 워낙 몰려 상위 5% 이내 학생만 지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교사 월급은 석사 학위 다른 직업에 비하면 상당히 적다. 장점이라면 방학이 있다는 것 정도다.

1 사르네락손 중학교 수업 모습. 핀란드 교사는 학습 내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업을 시작할 때 학생이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을 던져준 후 교사는 수업 시간 내내 학생의 탐구 과정을 도와준다.

 보수나 대우 등 좋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가르친다는 일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교사를 택한 사람들이라 아이들을 대할 때도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핀란드는 초1 때 담임 교사가 정해지면 6학년 때까지 계속 담임을 맡는다. 반 아이들도 변동이 없다. 한국 사람인 내 눈에는 이 시스템이 너무 불안해 보였다. 첫 아이를 입학시키고 나서 “뭐야, 한번 찍히면 끝장인 거잖아”라고 말했을 정도다. 몇 주가 채 지나기 전에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교사가 아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데, 아이의 어떤 면도 ‘문제적 행동’으로 비칠 리가 없었다.

 또 학부모의 치맛바람이라는 것도 없다. 학부모가 교사를 찾아가는 건 크리스마스와 종업식 날 정도, 1년에 2번이다. 큰 아이 학교를 처음 찾아간 날 핀란드 학부모가 교사에게 주는 선물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선물을 가져온 대여섯 명의 학부모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씩이 들려 있었다. “집 정원에서 기른 장미가 예쁘게 피어서 꺾어왔다”며 건네주는 학부모의 모습, 그걸 받고 행복해하는 교사의 얼굴을 보며 한국과 너무 다른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수업 내용도 특이하다. 실용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학만 해도 초1~3 정도까지는 직접 연산하는 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4학년이 넘어가면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하게 하고, 시험도 계산기를 이용해서 치른다. 또 계산기 사용법 수업이 따로 있다. 옷을 세탁하는 법, 전기 배선도를 보고 고치는 법 등도 남녀 모든 학생이 배운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손을 이용하는 공예·목공·미술 등의 수업이 많다. 손을 이용하면 뇌 발달에 좋기도 하고, 삶에 실용적인 도움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창밖을 바라본다던가 하면 집중을 안한다며 혼나지만, 핀란드에서는 이런 시간을 일부러 마련해주기도 한다. 공부에 집중하다보면 뇌가 열을 받기 쉬운데, 먼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딴 생각도 하면서 뇌를 이완시켜야 다음 학습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음악 시간에 배우는 악기도 실용적이다. 음악실에는 드럼이나 기타 등이 구비돼 있고 수시로 가르쳐준다. 물론 클래식 악기도 있지만,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악기를 가르쳐 주는 거다. 이런 학교 시설은 못 사는 동네 학교일수록 더 훌륭하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더 많은 걸 제공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학생을 위한 공간은 교실부터 체육관·음악실·목공실습실 등 다양하고 잘 꾸며져 있는데 반해 교장실이나 교무실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아니지만, 교장실을 아예 없애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내주는 교장 선생님도 꽤 있다. “교장이 교사들과 함께 교무실에 있어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교사와 학생들이 필요한 걸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교장은 교사와 학생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아침마다 교사를 위해 원두커피를 내려 가져다주는 일도 흔하다.

 수업 시간에 특히 강조하는 건 어울림이다. 핀란드는 학습 부진아, 장애아를 위한 별도 학급이나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다. 특수 아동들도 보통 학교에서 일반 아이들과 어우러져 함께 소통하고 공부한다. 대신 이들을 위해 보조교사가 1~2명씩 붙어 특별 지도를 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이고 어색했다. 하지만 “조금 느린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학교의 취지를 이해하게 됐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과 다른 아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돕는데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괜히 조바심을 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반성을 하기도 했다.

 종업식에 가보면 다양성과 어울림을 인정하는 핀란드 교육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한 학년 수업을 마치는 종업식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 데, 상 종류가 정말 많다. 공부 잘해서 받는 상은 딱 하나고 책을 많이 읽은 아이 상, 창의적인 아이디어 상, 미소 상, 친절 상 같은 게 있다. 학부모와 아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친절 상과 미소 상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세 아이는 아직 한번도 이 상을 못 받았다. 친절 상과 미소 상을 받은 아이의 학부모는 “내가 아이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있다”며 굉장히 기뻐한다.

2 윰메르스탄 초등학교 내부 모습. 초등학생 감각과 정서 발달에 맞게 다양한 색과 소품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몄다.

 핀란드 학교는 한 반에 20~25명 정도가 함께 공부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내내 같은 반이다가, 7학년 때 적성 교육을 시작하면서 반이 바뀐다. 고등학교 때는 인문·자연·직업의 세가지 계열로 분리된다. 핀란드는 기술자들이 돈을 많이 버는 사회라, 직업계가 굉장히 인기가 많다. 사회에 빨리 나가서 돈을 번 뒤에 대학에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 졸업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도 없다. 학생 55%가 직업계로 진학하는데, 특히 미용과 요리 분야 인기가 높다. 미용을 선택하려면 반에서 5등 이내에 들어야 할 정도다. 며칠 전에도 고교생 딸을 둔 이웃이 “아이가 미용을 하고 싶어하는 데 성적이 안되니 내신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핀란드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핀란드 사람에게 ‘평생을 두고 감사할 3가지 항목을 꼽아보라’고 하면 가족·건강에 이어 직업을 꼽을 정도다. 이유는 학생의 적성과 직업을 잘 연결해주는 학교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6년 내내 같은 담임 교사가 아이를 관찰하며 아이의 모든 면을 관찰한다. 성격이나 학업 능력같은 기초적인 내용부터 발달사항 하나하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성을 찾아준다. 적성을 찾을 때 담임 교사 한 사람의 의견만 반영되는 건 아니다. 아이를 주의깊게 관찰한 보조 교사나 교장의 의견도 반영된다.

 이렇게 찾은 적성을 토대로 아이와 학부모 상담을 통해 7학년부터 직업 교육에 들어간다. 원하는 직업이 되는 방법과 하는 일에 대해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고 실제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직장에 방문을 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진로 특화 교육은 계열이 나눠지는 고등학교 때부터인데,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른 계열로 바꿀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그래서 많은 핀란드 학생들이 3년제인 고교 과정을 4년간 다닌다. 직업계와 인문계 수업을 모두 수료하는 거다.

 핀란드 학교는 성적을 잘 받는 곳이 아니라, 국민이 평생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리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그래서 학과 공부만큼이나 취미 교육을 강조한다. 방과 후 수업이나 사교육도 취미 교육에 맞춰져 있다.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1시 경이고, 중학생은 2시, 고등학생도 3시면 다 집에 돌아온다. 과제는 30분 정도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끝낼 수 있는 분량이다.

 나머지 시간은 승마나 테니스·성악 등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데 쏟는다. 이런 사교육비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싸다.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학생 1인당 무료 교실을 많이 열어주고 축구나 농구·실내하키 같은 걸 하게 해준다. 사교육이 아니라 시립 기관에서 취미반을 열기도 하는데, 시설과 강사진이 어떤 사교육보다 우수하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 시험을 쳐서 반을 편성할 정도다. 시립 기관은 공짜는 아니지만, 부모의 수입에 따라 교육비를 차등해 받는다. 수입이 적은 부모도 아이가 재능이 있다면 시립 기관을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둘째와 셋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미래 사회에 한 사람의 천재는 필요 없다. 직장도 사회도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게 돼 있다. 혁신과 융합이란 협력 과정에서 나오는 시너지다”라고. “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는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핀란드 학교가 모든 학생이 함께 하는 교육을 추구하는 이유다.

윰메르스탄 초등학교 외부 모습. 핀란드는 부모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 공립학교일수록 학교 시설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부유한 동네에 있는 윰메르스탄 초등학교는 평범한 편이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은
정권 따라 교육정책 바뀌는 일 없어

‘교육의 낙원’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다. 초·중은 수업료뿐 아니라 급식비·교재비·학용품비까지 무료다. 고등학생은 교재비를, 대학생은 교재비와 급식비를 낸다.

 핀란드 교육의 질을 책임지는 건 교사다. 교사 선발이 매우 까다롭다. 초·중·고 할 것 없이 모든 교사 지원자들은 학사 3년, 석사 2년 과정의 석사학위를 따야 한다. 경쟁률도 치열하다. 인구 4800만 명인 한국의 교대·사대는 50여개인데 비해 인구 530만 명의 핀란드의 교대와 사대는 11개뿐이다. 대입자격시험 성적과 고교 내신 성적 외에 해당 대학이 주관하는 교직 정성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한다.

 교대와 사대의 커리큘럼은 연구 중심 교사교육(rese arch-based teaching)에 맞춰져 있다. 교사 개개인을 독립적 교육학자로 육성해 자신이 만든 교육 이론을 학교 현장에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교사의 자율권을 보장한다. 교사는 교육 전문가로서 높은 실력을 바탕으로 자부심을 갖고 학생 지도를 담당한다. 핀란드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교사인 것은 이런 이유다.

 또 높은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 정책과 방향이 바뀌는 일은 좀처럼 없다. 중앙 정부는 지방정부와 학교를 믿고 권한 대부분을 위임했다. 

이보영(47·핀란드 에스포시 거주·프리랜서 직장인)
정리=박형수 기자

※江南通新이 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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