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길이 전해지는 피보다 진한 우정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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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우(知己之友).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옛 위인들 중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지기지우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소리를 알아주는 벗, 백아와 종자기

중국 춘추시대. 백아는 거문고 연주로 이름난 음악가였다. 그의 친구 종자기는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렸다.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떠올리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거문고 연주 속에 넘실대는 강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은 그만큼 절친한 벗이었다. 후세에 둘의 사이를 가리켜 지음(知音·소리를 알아주는 벗)이라고 표현했다. 종자기가 먼저 세상을 뜨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들을 사람이 이제 없다며 칼로 거문고 줄을 모두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를 일컬어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 한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다, 사다함과 무관

사다함과 무관은 신라 시대 화랑이었다. 화랑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청소년 조직이다. 사다함은 진골 출신으로, 총명하고 용감해 화랑의 우두머리로 뽑혔다. 왕족 출신인 사다함과 달리 무관은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다. 비록 신분이 달랐지만 둘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됐고, 가야를 정벌하는 군대에 지원해 함께 적과 싸웠다. 전쟁터에서 둘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자’고 맹세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무관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사다함은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한 채 친구를 그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예술 속에서 쌓아간 우정, 정선과 이병연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 그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엔 기와집 한 채가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죽마고우였던 사천 이병연의 집이라는 해석이 있다. 정선과 이병연은 인왕산자락 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란 친구다. 인왕산 계곡서 물장구치던 둘은 한 명은 화가, 한 명은 시인이 돼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정선이 그림을 보내면 이병연이 시를 써서 화답하고, 이병연이 시를 써서 보내면 정신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이병연이 병으로 생사를 헤매게 되자, 정선은 그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놀던 인왕산의 비가 개는 모습(인왕제색도)을 그려 전했다. 하지만 이병연은 끝내 죽었고, 정선도 몇 년 뒤 생을 마감했다.

차로 맺어진 우정, 김정희와 초의선사

조선 시대 실학자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로 손꼽히는 추사 김정희는 어릴 적 학문을 배우러 청나라에 갔다가 차 문화에 심취하게 됐다. 자연스레 조선 시대 차 문화를 중흥시킨 승려 초의선사와의 우정도 깊어갔다. 초의선사는 해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나온 찻잎을 김정희에게 보내 봄을 전했고, 제주도에서 유배 중인 김정희와 반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김정희는 초의가 만든 차를 좋아해 초의에게 차를 빨리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내며 어린아이처럼 조르기도 했다. 어느 해 입춘 무렵, 김정희는 그 해 내린 첫 봄비를 대접에 받은 뒤, 빗물에 먹을 갈아 편지를 썼다. 전라도 대흥사에서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 초의선사에게 남쪽 제주에 가장 먼저 찾아온 봄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황유진 인턴 기자 slwitc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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