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화정치와 이산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치란 결국 인간관계를 바로 조정하려는 것이며 인간애와 단절된 정치「이데올로기」는 존재할 필요도 명분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정치행위는 인간비극에 대한 배려를 우선적으로 중지할때에야 비로소 「정치」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정치는 흔히 인간비극의 해소라는 도덕적 사명에서 이탈하여 지극히 비인도적인 모습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혁명」의 이름으로 동족을 살상한다든지, 「게르만」의 순수성을 위한답시고 유태인들의 강제이산을 정당화했던 따위가 그러한 사례이겠다.
세계대전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그와같은 비극을 더욱 심화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경화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성과 「삶의 질」에 대한 경시는 병적이라할이 만큼 강해졌다.
「이데올로기」정치의 악마화와 그 인간비극에의 외면이야말로 현대 공산주의의 가장 추한 치부인 것이다.
「유럽」의 한복판인 「오데르-나이세」강을 경계로 두터운 「철의 장막」이, 드리워진 이래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공산「이데올로기」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회의 기회를 박탈당했었다.
인간비극중에서도 가장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 헤어짐의 아픔 일진대, 이산가족들의 사무친 한을 묵살하는 「이데올로기」란 이미 존재할 도덕적 이유를 잃었다해서 지나침이없다.
이산가족문제는 결코 정치의 사족이 아니라 그 윤리적 선결조건이라는 관점이 그래서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오는 30일에 열리는 「유럽」안보회의의 기본문서 제3항이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출입국 신청을 호의적으로 검토할 것』을 규정하기에 이른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가 「유럽」분단의 현상을 인정받는 댓가로 할 수 없이 동과 서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을 재결합시키자는 인도주의적 요구에 양보한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공산「이데올로기」에 대한 서구적 인간성의 방리라해도 무방할 것이며 「유럽」정치의 인간화라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이산가족과 그들의 비탄을 외면하는 북괴식「이데올로기」의 도덕적 마비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심정은 여전히 우울하기만 하다.
우리측의 「6·23선언」에 의해 북괴에는 공존의 길이 틔어졌음에도 붙구하고 북괴는 계속 우리 내정에 간섭하려는 술책에만 집착, 이산가족재회를 위한 한적측의 인도적 제의마저 계속 외면해왔다.
흩어진 가족들과 노부모의 생사·안부를 전해주는 일은 남북문제의 정치적 토의와는 궤를 달리해서 추구될 수 밖에 없고 또 그렇게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다.
남북간의 정치적·군사적 대치상태를 두고 볼 때 급속한 정치적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할지언정 상호간의 점진적 신뢰회복을 위한 비정치적·비군사적 노력만은 부단히 경주되어야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제기된 것이 우리측의 「가족찾기」사업이었다.
「가족찾기」사업은 한반도정치의 윤리적 선결문제인 동시에 그 인간적 알맹이기도 하다. 민족의 한을 우선적으로 풀어주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밖의 정치·외교문제도 훨씬 순탄하게 논의될 수가 있을 것이다.
정치와 군사에 앞서 인간적 심성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화기롭지 않은 한 정치나 외교문제도 제대로 토의될 수가 없다.
북괴는 「유럽」공산주의자들의 선례를 보아서라도, 또는 인간회복의 시대적 요청을 보아서라도 가족찾기 사업을 가로막는 부당한 정치적 술책을 포기하고 즉각 인간우선의 적십자 본연의 사명에 무조건 순응함이 마땅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