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사르니트」(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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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불타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녹야원) 경내에 「쟈이나」교(각이나교, 혹은 기나교로 번역됨)의 사원이 같이 섞여있는 것을 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 이 종교는 인도에 「아리야」 인종이 침입하기 이전, 진작부터 생겨났던 출가주의의 종교로서, 이미 불교 이전에서부터 있어온 그대로, 불교가 일어난 후에도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느 의미에서는 자매적인 성격을 띠고 왔다고도 볼 수 있는 종교다. 교조는 불타의 경우와 같이 왕족 출신이며 이름은 「바르다마-나」요, 일찍 30세에 출가하여 12년 동안이나 고행과 수련을 쌓아 깨달은 자가 되었다. 불교에서 깨달은 이를 불타라 하는 것 같이 그들은 깨달은 이를 「지나, 혹은 쟈이나」라 하니 그것은 승리자란 뜻으로서 모든 번뇌를 이겨내었음을 말하는 것이요, 또 「마하비라」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대용자, 대웅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구조를 「쥬나타푸트라」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가 「쥬나타」족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대는 불타와 같은 때였고, 42세로부터 30년 동안 전도하고 72세에 지금 「마트나」지방에서 열반한 이거니와, 그 당시 불교를 도와주었던 「빔비사라」왕은 불타만이 아니라, 「마하비라」에게 대해서도 비호의 힘을 제공했던 것이요, 지금도 두 교의 신도들은 서로 질투함이 없이,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 사원이 같이 있는 것인 듯 했다.
다만 불타와 「마하비라」가 같은 지역, 같은 시대에, 또 같은 「해탈」의 법문으로써 민중을 교화시키고 있었으면서, 생전에 서로 만나본 일은 없었다고 전하는 것이다.
그 사원 안에 안치한 「지나」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바른편 손을 땅에 드리운 것은 창생을 어루만져 깨닫게 하는 뜻이라는데, 불상과는 제도와 양식이 서로 다르게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겨 「아쇼카」왕의 돌기둥이 섰던 자리를 둘러보았다. 돌기둥은 진작 옛날에 깨어져 버렸고, 지금은 기초부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다만 다행하게도, 그 돌기둥의 기둥머리에 있었던 네 마리의 사자상만은 지금 「사르나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세계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므로, 나는 발길을 다시 돌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 박물관은 1910년에 건축한 것이요, 「사르나트」 옛성터에서 발굴된 여러 가지 고대 인도의 유물들을 보관한 곳인데, 내게 있어서는 가장 먼저 첫눈에 뜨이는 것이 바로 「네 머리 가진 사자상」이었다.
몸뚱이는 하나로 연결되었으나, 머리는 사방으로 네 개가 따로 떨어졌는데, 네 개의 머리가 꼭 같이 만들어진, 너무도 경이적인 솜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 그 당시 무슨 광택자료를 썼던 것인지, 2천수백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사자상의 광택이 조금도 가시지 않아 금시 무슨 기름이라도 바른 것같이 번질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방면 도료 전문 연구가들은 몇 번이나 와서 조사연구를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불타를 사자에 비겼기 때문에 불경마다에 사자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고 또 이렇게 조각으로까지 표현하게 된 것이어니와 요컨대 사자는 짐승들의 왕이요, 그 힘과 용맹이 능히 모든 짐승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므로 불타의 용맹과 설법을 사자에 비겨온 것이다.
지도론에 불타를 일러 「인중사자」라 하고, 열반경에 불타의 설법을 「사자후」라 했거니와, 모든 경문이 모두 다 한결같이 그렇게 비유해 왔을 뿐더러, 특히 이곳에 있는 「네 머리 가진 사자상」은 인도국가의 상징이 되기까지 했음을 본다.
그리고 사자상 밑받침에는 역시 수레바퀴를 새겨서 불타의 설법을 법륜에 비겨온 것을 표시했으며, 그 수레바퀴와 함께 사방으로 돌아가며 소와, 코끼리와, 말과, 사자 등 불교 및 불타에게 연고 있는 짐승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여기서 가장 소중히 받드는 것은 서편 벽에 모셔놓은 「석가모니」 불상인 것이다.
이 불상은 불타의 설법하는 상으로서 5세기 초엽의 제작이요, 모든 불상 가운데서도 자비심이 뚝뚝 흐르는 가장 표준형의 작품이라고 일컫는 불상이었다.
나는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사르나트」 경내를 벗어나 시 한 장을 남기고 떠났었다.
나는 분명 폐허 속에서
옛모습 또렷이 바라보았소
나는 분명 깨어진 탑 속에서
자비한 목소리 들어보았소
나는 분명 나무 가지 새로
나부끼는 그 얼굴 만져보았소
나는 분명 바람결에 묻어오는
향기론 그 몸내 맡아보았소
님과 나,
이 언덕 저 언덕을
같이 손잡고 걸어보았소.

<계속> [노산 이은상] [제자 이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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