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 … 부동산 > 주식 > 채권 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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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북한 문제는 언제나 한국 증시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변수다.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창일 때 남북 경제협력에 참여한 기업들이 테마주로 각광을 받았다. 반면 2006년과 2009년 북한 핵실험 때엔 주가가 폭락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만나면 대부분 ‘북한과 전쟁이 나면 자산을 어떻게 보존할 거냐’는 질문을 던진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 이슈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엔 호재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뒤부터 업계에선 통일 이후 유망 자산과 수혜주를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다행히 참고할 만한 ‘타산지석’이 있다. 1990년 통일된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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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종금증권 오창섭 연구원은 “독일은 막대한 통일비용으로 15년 가까이 후유증을 겪었지만 지금은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며 “우리도 남북한 사이의 국력 격차가 부담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통일의 가장 큰 효과는 인구 7000만이 넘는 내수시장이 생긴다는 점이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엔 기댈 언덕이 생기는 셈이다. 국방비 절감 효과도 크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8%를 국방비로 쓴다. 유럽의 군사강국인 영국(2.5%)·프랑스(2.3%)보다 높은 수준이다. 만약 2015년 통일이 돼 국방비를 스페인(0.9%) 수준으로 줄인다면 2040년까지 9160억 달러(약 976조원)의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 이 돈이 고스란히 경제활성화에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하면 원자재 수입을 줄일 수 있다. 북한 리스크가 사라지면 정부나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조달금리도 낮아진다.

 통일을 기대한다면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할까. 신영증권 김재홍 투자전략팀장은 “독일의 사례를 보면 투자 매력도는 부동산>주식>채권 순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일 초기에는 부동산이 가장 매력적이다. 북한 곳곳에 도로와 철도·항만·주택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상승 랠리는 예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 독일에선 통일 초기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면서 90년대 중반부터는 오히려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나면 그때부턴 주식의 매력이 올라간다. 독일 닥스지수는 90년 9월~2000년 240% 넘게 올랐다. 의류와 제약 등 투자비용을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경공업 관련주가 가장 큰 수혜를 봤다. 독일의 대표적인 의류 브랜드인 ‘휴고 보스’는 주가가 971% 상승했다. 제약회사인 바이엘도 445% 올랐다. 물류기업인 루프트한자(397%), 에너지 기업 에온(336%)도 수혜를 입었다. 다만 주식시장이 항상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독일 증시는 통일 직전 ‘허니문’ 기간 동안 40%가량 급등했지만 이후 3년간 고통스러운 조정기간을 거쳤다. 통일비용 부담으로 독일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채권은 당분간 인기가 떨어질 전망이다. 통일비용 마련을 위해 채권 발행이 늘면서 금리가 급등(채권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신영증권 홍정혜 연구원은 “채권가격 폭락을 저가매수의 기회로 보고 매수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선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통일이 된다면 외국인 투자가들은 국내에 투자한 돈을 기대수익률이 높은 다른 나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원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충격이 올 수 있다. 통일비용도 문제다. 2010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추산한 비용은 점진적 통일의 경우 3220억 달러(약 343조원), 급진적 통일일 때는 2조1400억 달러(약 2280조원)였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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