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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대책 없는 낙관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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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영익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연초에 신촌의 유명한 중식당에서 저녁 자리가 있었다. 대기업, 공기업의 회사원들…. 추운 겨울, 서른 즈음의 남성 여섯이 모였다. 친구 A의 결혼 발표 자리였다. 술 대신 청첩장을 돌리며 한창 흥이 오르던 중이었다. 친구 하나가 분위기 깨는 질문을 했다.

 “집은 어떻게 구했어?”

 부끄럽지만 그 질문을 기다렸던 게 사실이다. 궁금했다. 신혼집 마련은 30대 남성의 가장 큰 숙제다. 2년 전 전세로 신혼 살림을 시작한 친구도 전세대란 탓에 보증금 2억에 월세 40만원 내는 반(半)전세민이 됐다. 그런데 A는 질문을 받고도 싱글벙글이다. “전세 구했나 보구나. 대출이겠지.” 번뇌 어린 눈으로 모두 A를 주시했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난 월세로 10년만 버티려고. 2020년 되면 집값은 폭락할걸… 그때 한 채 사면 되지.” 물론 A가 대학 때부터 낙관주의자이긴 했다. 학점 인플레 시대에도 마음에 안 드는 강의는 F를 받고 마는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무슨 대책 없는 낙관주의인지… ‘생돈 날리는 월세만은 싫다’며 우리 또래 전세 난민이 속출하는 시대 아닌가. 그래도 일단 ‘10년 월세 버티기’를 외치는 A의 얘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집 가진 사람들… 전부 50~60대야. 나중에 집 팔고 실버타운으로 옮기려 해도 우리 20~30대가 안 사주면 가격이 유지될까. 10년 뒤엔 어려울 걸. 당장 2020년부터 인구 절대값이 줄어들 텐데. 젊은 사람들이 집값 올린 어른들에게 복수하려면 집 안 사는 게 제일 빨라.” 그의 말에는 부모 세대(50~60대)를 향한 일종의 분노가 느껴졌다.

 듣고 보니 그 낙관주의가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일본에선 단카이(團塊) 세대가 은퇴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맥을 못 추고 있다. 문득 “부모님의 아파트값이 폭락해야 내가 살 수 있다”던 동료 기자의 푸념이 떠올랐다. ‘부모가 망해야 내가 산다…’ 어쩌면 이런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우리 20~30대의 숨은 자아일지 모른다. 우리 세대가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는 장기하의 노래에 빠지는 이유도 그렇고.

한영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