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자급률 10% 크림 … 러와 합병하는 건 자살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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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에 합병되면 200만 주민들은 당장 생활에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는 전기·가스·식수 등이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현지 기업인들의 탈출 러시가 가시화되면 지역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새로 편입되는 러시아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크림자치공화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경제적 자살 행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공은 일단 크림반도 주민들에게 넘어갔다.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우크라이나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냐는 오는 16일 주민투표를 통해 판가름 나게 된다. 러시아계 주민이 60%나 돼 분리에 찬성하는 표가 많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민들로서도 위험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합병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냐, 아니면 ‘고래(러시아-우크라이나) 싸움에 새우(크림자치공화국) 등 터지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냐를 두고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크림반도는 식수 공급의 8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한다. 대부분 드네프르강에서 연결된 북크림운하를 통해 공급받는다. 농업용수 등 다양한 수자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운하는 크림반도와 본토의 접경지인 케르손주 페레코프를 통과한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이 확정되면 여기서 곧바로 식수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전기 공급도 어렵게 된다. 크림반도의 연간 전기 사용량은 1200㎿다. 현지 4개의 화력발전소가 공급하는 양은 소비량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페레코프와 촌하르 등 접경지를 경유해 본토로부터 공급받는다. 크림반도의 친러시아계 자치정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무장대원들이 에너지 시설 보호를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SZ는 전했다.

 천연가스의 경우 우크라이나 국영회사 ‘체르노모르네프테 가스’로부터 수요량의 3분의 2인 연간 20억㎥를 공급받고 있다. 이 회사는 국가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친유럽 성향의 키예프 과도정부가 관할한다. 나머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제공된다. 이론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지금보다 더 많은 가스를 받을 수 있지만 파이프라인이 우크라이나 본토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난관이 예상된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도 현지 친러시아계 무장대원들에게 장악됐다. 국영회사 측은 이들이 파이프라인에서 불과 5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장갑차량을 두고, 자동소총도 50m 거리에 배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0m를 유지해야 하는 안전 수칙을 위반한 것이다.

 크림반도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의 탈출 러시도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지역 경제가 일거에 마비될 수도 있다. 2012년 크림자치공화국의 국내총생산(GDP)은 43억 달러(약 4조5600억원)로 우크라이나 전체의 2.4% 수준이다. 관광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흑해 해안을 중심으로 하는 크림반도 휴양지에는 지난해 500만 명이 다녀갔다. 분리에 따른 혼란과 러시아에 대한 반감 등으로 서구 관광객 수가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러시아 성향의 크림자치공화국 당국자들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는 “러시아에 귀속되면 전기·수도·가스를 어떻게 공급받게 될 것인지에 대해 비상계획을 세워놓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합병이 성사되면 러시아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도로나 에너지 파이프라인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만 매년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한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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