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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6) 제46화 세관야사(1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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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량밀수>
8·15해방으로 일본·중국 등지에서 돌아온 해외동포와 장병 및 공산당에 쫓겨 월남한 동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울을 비롯한 남한 땅의 도처에는 실업자가 많이 생겼고 식량과 의류 등 생활필수품이 부족하여 물가는 날로 치솟았다.
미군이 진주(45년9월8일)하기 직전에는 일본군 창고에서 터져나온 군용식량과 피복류로, 미군이 진주한 직후에는 각종 미제품이 거리에 범람했었다.
전시에 고난을 겪었던 국민들은 일시에 쏟아져 나온 물자를 보고 『해방이 좋기는 좋구나』하는 식이었다.
더구나 미군정장관 아널드 소장이 일본인들의 재산을 모두 국고에 귀속시킨다는 법령을 공포하자 일본인들은 가재도구·의류·골동품 등 재산을 모두 시장에 내놓았다.
미 군정청은 일인가옥과 동산 등 모든 재산을 접수하는 동시에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자리에 일인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부 몰지각한 한국사람들은 철수비 명목(?)으로 일인들에게 권리금을 주고 일인가옥에 입주하는가하면 일인들을 찾아다니며 재산을 헐값에 사서 장사를 하여 치부하기도 했다.
특히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과 가까왔던 임정요인 김모 박사는 미군정 당국과 수의계약으로, 몰수한 일인재산을 불하받아 상인들에게 되넘겨줌으로써 정치자금을 조달하여 『김모 박사의 고리짝』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빈축의 대상이 됐다.
해방직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식량사정이었다.
군정당국은 안남미를 긴급 도입해서 배급했는가 하면 외국에서 면포를 들여와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쌀을 공출시키는 등 식량대책에 부심했다.
그러나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여 점차 늘어난 귀환동포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헤매야했다.
호남선 야간열차는 쌀장수들로 전부 메워질 정도였고 서울역에는 쌀부대를 실은 손수레와 마차가 줄을 이었으며 쌀 주인 부녀자들의 「몸빼」(일정하 여자 전시복)부대는 장관이었다.
군정장관 러치 소장은 1946년 연말에 『한국국민은 쌀만 먹지 말고 빵과 고기를 먹으라』고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칠면조를 먹으란 말이냐』고 신문의 고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너무나 몰랐던 미군정 당국의 성명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일본의 식량난도 마찬가지였다. 패전으로 식량공급원이던 한국과 대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귀환일인들이 날로 늘었고 계속된 흉작이어서 식량위기를 맞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비록 밀수라 해도 한국으로부터 쌀 반입을 무조건 받아들였고 오히려 쌀 밀수입자에게 가능한 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일본의 실정이 우리 나라의 식량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하고 밀수를 자행한 것이다.
한국상인과 연안어민들은 1백t급 내외의 기동선 아니면 어선을 이용하여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쌀을 가득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이들은 쌀을 넘겨주고 일제화장품·의류·학용품·의약품·기계부속품을 한탕 밀수입하면 4, 5배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치부한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당시 통영(충무)에서 일본 대마도까지는 3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대마도를 깃점으로 하여 부산과 여수를 연결하는 삼각선 내의 다도해는 밀수의 활무대였고, 일대의 어장막은 밀수품의 은닉장소로 안성마춤이었다.
당시 일본세관에서 정식 통관된 쌀만도 연간 8만석이었다니 밀수량까지 합치면 얼마만큼 일본에 쌀이 건너갔을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미 군정청은 이런 실정을 감안하여 1946년5월 부산특별미곡 취체령을 내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미곡밀수출 처벌령을 공포하여 밀수범 검거자에게는 압수량의 25%의 상여금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일정 때 일본을 이웃 드나들 듯 했던 연안주민들의 협조를 얻기가 힘들었고, 해방으로 민심이 극도로 해이해져있었으며 밀수단속 행정력도 모자라 밀수검거실적은 거의 없었다.
밀수꾼들은 미군이 불하한 일본전차용 중고엔진을 단 쾌속정을 이용한데 반해 세관은 인원도 부족한데다 감시선이라야 1개 세관에 속력이 느린 노후선 1척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감시선은 밀수선에 포위되어 희롱당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군정당국은 세관원의 권총휴대를 일체 금지시켜 세관원은 더욱 무기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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