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과 금융간의 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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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도 통화면의 긴축 정책을 계속 유지해 나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는 하반기에도 과잉 유동성에 의한 초과 수요 세력이 여전히 남게 될 것이라는 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은 지금의 통화 추세에 비추어 옳은 것 같다.
상반기 중 금융 측면에서 강행된 긴축 정책은 거의 정도를 벗어날 경도로 이례적인 것이었다. 5월말까지 3천2백억원의 금융 자금이 재할 회수·통화 안정 증권·통화 안정 계정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동결되었다. 수입 담보 적립금으로도 1천여억원이 흡수되었다.
이와 같은 초강경의 긴축 정책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재정 부문의 살초 때문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경기 대책 지출 때문이라 하지만, 5월말 현재 2천5백억원을 넘어선 재정 부문의 통화 증발은 수년 내의 기록적인 수준으로 신용 질서의 근본적인 교란 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가피하게 금융에서 뒤치다꺼리를 하고는 있지만, 이런 불균형은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 동향에 따라 재정·금융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겠으나 어느 한쪽이라도 지나친 불균형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총체적인 수요 관리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또 이런류의 불균형 하에서 일시적인 통화 공급의 관리는 가능하다 해도 자금 순환 과정에서 여러 애로를 파생시킴으로써 국면에 따라서는 「디플레」 효과의 지나친 앙진을 유발할 경우도 없지 않다. 올해 1·4분기 이후에 겪고 있는 일부의 자금난도 이런 부작용의 하나일 수 있다.
정부의 당초 약속은 하반기의 재정 운용을 축소하고 금융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 같은 방침이 상당히 후퇴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주로 양곡·비료 등 특별 회계 부문의 적자 축소가 올해에도 여의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지금와서 새삼스러운 바가 아니므로 연초부터 진작 재정 계획을 더욱 신중하게 짰어야 옳았다. 결국 남은 길은 약간씩 호전되고 있는 일반 재정을 더욱 긴축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금융 전가 부분을 줄이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우기 통화 환수에 기여했던 해외 부문도 이제 증발 부분으로 반전될 기미가 없지 않고, 그 동안의 재정 살초로 인한 수요 압력까지 현재화할 것을 고려한다면 하반기 통화 신용 정책은 상반기와는 또 다른 「패턴」으로 신중하게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긴요하다 하겠다.
통화 당국이 상반기와 같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통화 규제 방식을 지양하고, 지준·재할인 정책 등 보다 정통적이고 본원적인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금융의 탄력성을 회복한다는 뜻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다만 이의 전제는 역시 재정의 건전 운용에 있음은 물론이다.
금융의 탄력성과 관련, 항상 과소 평가 되고 있는 이자율 정책도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 여건의 경비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 기업이 겪고 있는 운영 자금난이나 금융 기관의 일시적인 대금 부족은 재정 금융의 균형이 회복되고 통화 관리 방식이 정상화하면 그에 뒤따라 호전될 것이므로 우선은 재정 쪽에서 정상화에 힘을 기울여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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