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이 처 강청에게 보낸 편지|<『대화록』서 발췌>「문혁」와중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파리=주섭일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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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서독「함부르크」아세아문제연구소의「헬무트·마르틴」씨가『모택동 대화록』을 불어로 출판했다. 이 책에는 모와 그의 조카들 및「앙드레·말로」간의 대화, 그리고 66년7월 처인 강청에게 보낸 편지 등이 수록돼있다. 모가 이 같은 대화를 한 64∼66년은 등소평 일파의 실권파가 문혁파에 의해 하나하나 제거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모는 조카 모원신(현 요령성당서기)에게 그의 이념을 깊이 이해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조카딸 왕해용(현 중공 부외상)에게는 관료주의화한 교육에 저항하라는 뜻에서『출세하려면 농땡이를 치라』고 권하기도 했다. 모는 이 대화록에서 아들 모안영이 한국전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죽고 또 두 동생 택민, 택단과 누이동생이 국민당 군에 살해되었던 쓰라린 과거를 조카들에게 들려준다. 왕해용은 본명이 모연신으로 모의 첫째동생인 모택민의 딸. 택민이 34년 살해되자 장사중학교사 왕손범의 양녀로 들어가 왕씨 성을 따게 되었다. 모원신은 모의 둘째 동생 택단의 아들로 왕해용과는 4촌간이다. 다음은「대화록」가운데 모택동이 66년7월 중국서부지방을 여행하면서 처인 강청에게 보낸 편지를 간추린 것이다.
『강청, 나는 당신의 6월29일자 편지를 잘 받았소. 이번 달에는 두 분의 외국 손님들이 나를 방문할 것이요. 이들을 영접한 후 나는 당신에게 차후 나의 여행계획을 알려줄 것이요. 나는 지난 6월15일「울린」을 떠난 후 서부지역 이곳 한 동굴 속에서 10일 이상이나 보냈다오.
그동안 내가 읽는 보고서는 굉장히 흥미진진했소.
7내지 8년 후에는 거대한 혼돈이 새롭게 하나의 거대한 질서로 일변해 갈 것이요.
나는 내가 쓴 몇 개의 소책자가 정신적인 강대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소. 이에 대해 모두가 격찬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요.
지극히 중요한 한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신념에 반대하여 억지로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란 내 일생에 단 한번도 아직 없었던 일이 아니겠소.
전에 노신은 그 자신의 평론을 교정했소. 지금 내 기분은 바로 이런 것과 흡사하다오. 나는 솔직성과 정의를 사랑하오.
내가 내자신의 시체를 해부할 때 내가 타인의 것을 할 때보다도 더욱 준엄하다오.
얼마간의 방황 후에는 나는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항상 추진하게 된다오. 그러나 동지들은 이를 조금도 믿지 않고 있다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심을 뿌리칠 수 없소. 내가 젊었을 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소.
「나는 2백년을 살고 급하게 흐르는 강처럼 3백만리를 달려 돌아다닐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했었다.」 이것은 약간 과장이 있는 듯하나 충분히 입증되었소. 산 속에 호랑이가 없을 때 원숭이가 임금이 된다고 하는 말을 항상 생각해왔소.
나에게는 호랑이 같은 요소도 있을 것이고 원숭이 같은 요소도 있을 것이요. 옛날 나는 한 시대의 이학의 편지 귀절을 인용한 일이 있소.
「높이 솟아있는 것은 부수기 쉽다. 빛나는 것은 더럽혀지기 쉽다. 봄의 백설과 같은 것은 점점 더 희귀해간다. 유명한 이름에 무거운 짐을 지고 <좋다>하면서 행동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마지막 두 줄이 완전히 나에게 부합되는 것으로 나는 이것을 당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읽었었소.
이 세계에는 1백개 이상의 정당이 있는데 다수가「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는 이 이상 더 믿을 수 없소. 만일「마르크스」와「레닌」이 그들에 의해 멸망했다면 우리에게 생의 이유가 이 이상 더 무엇이요.
당신 역시 이 문제를 심화시켜 더욱 새겨야할 것이며 승리를 당신이 머리 위에 올리도록 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소.
당신은 자신의 약점·결함·과오들을 자주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오. 그들(유소기 일파)은 당을 전복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나를 뒤엎어 버리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요.
현재 우리들의 과업은 당내와 전국에 퍼져있는 우익적 요소들을 부분적으로나마(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쳐부수는데 있소.
7또는 8년 후의 말기에 가서는 뿔 달린 악마들과 뱀의 정신들을 박멸하기 위한 새로운「캠페인」이 터져 나갈 가능성이 있으며 그 후에도 이런「캠페인」은 수차에 걸쳐 반복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요.
「미래는 찬란함을 예고해 주나 그 도중은 가시덤불이다.」 바로 이것이 결과이며 이 두 제의야말로 계속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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