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미국은 뭔가 하기보다 가만히 있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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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세계가 냉전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담론이 무성하다. 러시아는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각에 으르렁거리고, 학살을 자행하는 시리아 정권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국익이나 우방을 지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냉전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중한 태도도 완전히 잘못되지 않았다.

 냉전은 두 강대국(미국과 소련)과 두 이데올로기가 대립한 독특한 세계질서였다. 양국은 전 세계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배치하고 광범위한 동맹을 구축했다. 전 세계는 검은색과 붉은색의 체스판으로 나뉘었다. 두 진영에겐 자신의 안보와 번영, 파워만이 전부였다. 제로섬 게임이었다. 소련이 하나를 얻으면 서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하나를 잃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게임은 끝났다. 서구와 NATO가 이겼다.

 지금은 기존의 게임과 새로운 게임이 섞여 있다. “전 세계는, 국가가 강력해지기를 원하는 나라들과 국민이 번영하기를 바라는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다”고 미 존스홉킨스대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는 말한다. 첫 번째 부류는 러시아와 이란, 북한이다. 이들 나라 지도자는 강력한 국가 건설을 통해 자신의 권위와 위엄,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러시아와 이란은 석유 자원을, 북한은 식량을 끌어낼 수 있는 핵무기를 가졌다. 3국의 지도자는 전통적 권력정치 게임을 통해 글로벌 시스템에 도전하고, 생존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국민의 번영을 통해 국가의 위엄과 영향력을 쌓으려는 나라들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남미 4개국 공동시장,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의 가입국을 망라한다. 이들은 세계의 조류를 신냉전이 아닌 세계화와 정보기술(IT) 혁명의 융합이라 보고 학교·인프라·광대역 서비스 구축과 더불어 무역 체제·투자 개방·경제 관리에 힘쓴다. 중산층 직업이 더 많은 기술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능력이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세계에서, 더 많은 국민들이 보다 잘살 수 있게 말이다.

 요즘 세(勢)를 불리는 제3의 부류도 있다. 파워를 전개할 수도, 번영을 구가할 수도 없는 나라들이다. 다시 말해 무질서의 세계를 구성하는 국가군이다. 이들 나라는 그나마 남아있는 부와 권력마저 삼키는 블랙홀이다. 국가 정체성이나 국경 같은 근본적 문제를 두고 소모적인 내전을 벌인다.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수단, 소말리아, 콩고와 그 밖의 분쟁 지역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나라에 대해선 국가 권력 강화에 집중하는 첫 번째 부류 국가가 개입하기도 한다.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번영을 원하는 두 번째 부류 국가들은 무질서의 세계에 발을 깊숙이 들여놓는 것을 꺼린다. 인도적 참사를 경감시킬 능력이 있지만, 지정학적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돌아오는 것은 계산서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이 세 부류 국가군의 특징이 교차하는 나라다. 우크라이나 혁명은 러시아의 공작으로 친러 야누코비치 정부가 EU와의 무역협정을 백지화하면서 일어났다. 이 협정은 잘사는 데 집중해온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괴리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에 기운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독립론을 촉발시킨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국의 내정 개입 기준은 분명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소련의 실재적 위협이 없어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조 달러를 쏟아붓고 수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이렇다 할 변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에너지 자립도는 높아졌고, 또 다른 9·11 테러를 막아낼 만큼 정보전에 능해졌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술과 자원, 인내심으로는 무질서의 나락에 빠진 나라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냉전 때는 정책 결정이 아주 단순했다. 목표는 적의 봉쇄였다. 할 일은 명확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 비판론자들은 그가 시리아 사태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러는지는 알겠다. 시리아의 혼란이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미국의 미래를 담보할 노력을 방해하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비용 안에서,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거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학살을 멈출 수 있는 정책이 있을까. 있다면 나도 찬성이다.

 그러나 중동에서의 최근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첫째, 우리는 중동 국가의 복잡한 사회·정치적 구조를 잘 알지 못한다. 둘째, 천문학적 비용을 들이면 이들 국가의 폭력 사태 등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단독으로 바람직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무리다. 셋째, 방향을 바꾸기 위해 개입한다면 결국 문제 해결의 책임을 우리가 떠안게 된다. 그 책임은 미국이 아닌 각 나라의 몫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원문은 중앙일보 발행 코리아중앙데일리-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