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본과 비교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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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왼쪽부터 차례로 메르켈과 시진핑.

이달 말로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독일 방문 기간 중에 시 주석이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으려던 계획이 독일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신 훔볼트 대학 인근 ‘노이에 바헤’ 전몰자 기념관을 참배하는 일정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동반 없이 시 주석 단독으로 방문하게 됐다.

 이에 대해 독일 정부 소식통은 “중국과 일본의 과거사 분쟁에 개입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슈피겔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 주석의 독일·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 유럽 4개국 순방 일정 중 핵심은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시설 방문이었다. 독일의 과거사 반성 현장을 찾음으로써 우회적으로 일본에 “독일처럼 과거사를 반성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중국 지도자들은 독일 방문 때면 산업시설을 주로 찾았었다. 한 외교소식통은 로이터에 “과거 독일을 방문한 중국 최고 지도자 중에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관련 시설을 찾았던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시 주석이 ‘중·일 역사 전쟁’에 직접 뛰어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2차 대전 전범(戰犯)을 합사한 일본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와 대조되는 장소를 직접 방문, 일본과 독일의 차이를 강렬히 부각하려는 의도였던 셈이다.

 사실 정상의 방문, 특히 이번과 같은 국빈 방문의 경우엔 양국이 사전 조율, 합의한 내용만 공개된다. 외국 정상이 원하는 바가 대개 반영되지만 안 될 때라도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 방문의 경우 지난달부터 시 주석이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방문하고 싶어하는데 독일이 거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중국이 차선책으로 노이에 바헤 참배를 추진했으나 독일 정부가 가타부타 답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전언도 뒤따랐다. 정상외교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만큼 중국이 독일을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해 방문하려는 의사가 강했다는 방증이다. 실제 중국의 외교관과 언론은 근래 독일의 전후 행보를 전하며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관영 CC-TV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무릎을 꿇었던 장면을 내보냈다. 스밍더(史明德) 주독 중국 대사는 1월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총리가 홀로코스트 추모비에 헌화하는 대신 아돌프 히틀러의 벙커를 방문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은 그럴수록 더 난감해했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결국 추모관 방문을 거부하고, 메르켈 총리가 동행하지 않기로 한 이유다. 중·일 간 역사 논쟁에 휘말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독일의 아픈 과거가 계속 거론되는 것도 내키지 않는 것이다. 독일로선 경제 등 양국 간 현안을 제치고 중·일 과거사가 정상외교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독일 정부 관계자는 “시 주석이 개인 시간에 2차 대전 추모시설을 방문하는 건 환영한다”고만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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