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과 한자교육의 혼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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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문교육은 국민교육의 기본이라고 한다. 확고한 어문정책에 따른 올바른 어문교육만이 국민을 올바르게 교화하여 문화를 꽃 피우고 나라를 부강케 할 수 있다.
국어의 중요성이 그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한 나라의 말과 글을 갈고 닦는 작업이 중시되고 그 교육이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의 근간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광복 후 30년이 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확고한 어문정책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떤 때는 한글 전용이다, 어떤 때는 한자 혼용이다 하면서 한글 전용과 한자 교육문제의 혼동에서 빚은 혼선을 거듭해왔다.
그런 가운데서 74년 7월 문교부는 중고교의 국어·국사 교과서에서의 한자혼용을 결정,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다.
문교부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70년 이후 대학을 제외한 각급 학교의 모든 교과서에서 오자를 없애고 순수하게 한글로만 교육을 실시한 결과에 대한 냉철한 반성에서 나온 당연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이른바 『애국적 한글 전용론자』들은 최근에도 또 다시 이 한글 전용과 한자교육문제의 전혀 다른 것을 고의로 무시하면서 이미 논증이 끝난 문제를 재론하고 있다.
물론 무슨 문제든 이에 관해 학자나 교육자들이 순전한 학술적인 견지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은 그것대로 뜻이 있지만 한글 전용론자의 종래 주장이 「사용」과 「교육」을 혼동한데서 나온 천편일률적인 감정론이라는데 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우리가 한글 전용 자체를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공용문서의 한글화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한자사용 빈도를 줄이는 점차적 한글전용의 방향은 원리상 나무랄 데가 없는 것으로 우리도 믿고 있다.
그러나 한자교육의 필요성 내지 당위성은 이 한글 전용의 주장과는 전혀 별개의 차원에 속한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거의 한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 「아시아」지역에 있어서 한자가 중요한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는 우리도 한자 교육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 뿐더러, 사용의 문제를 전제하고서라도 한자에 대한 무지는 결국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해 전통문화와의 단절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포기임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학교교육에서 외국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 외국어가 불가결한 도구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군다나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우리의 젊은 세대에 대해서 한자가 섞인 고전문헌하나 못 읽는 문맹자를 만들자는 주장의 황당무계함을 누가 용납할 수 있겠는가.
실지로도 해방이후 우리는 한자교육을 소홀히 했던 결과 우리의 젊은 세대는 고전 이해는 고사하고 명승 고적지나 각종 문화재에 걸린 안내 현판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말 가운데 약 60%가 한자어라고 한다. 이런 현실을 망각하고 그 의미 파악에 필수적인 한자교육을 도외시하라는 주장은 분명히 그 「애국적」동기가 비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요컨대 한글전용은 장차 바람직한 것이고, 일상생활에서의 편리를 위해서도 그 이상은 추구되어야겠지만, 그 때문에 한자교육 문제에 대해서 또다시 왈가왈부를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과 정력의 낭비를 뜻할 뿐임을 알아야 겠다.
최근 대한교련에서 주최한 「교육 논단」에서의 일부 논자들의 논지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한 본질의 변함없는 주장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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