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여가를 사회와 연결하자-이효재(이대교수·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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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통적인 한국의 대가족사회에서는 여성의 위치가 딸, 아내, 어머니로서 남성에 의존적이며 개인으로 독립된 사회적 권리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역할은 친족과의 넓은 관계 속에서 일생동안의 생활보장을 얻을 수 있었고 중년기이후에는 어머니로서 대가족속에 확고하고 안정된 지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비해 현재 도시를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는 핵가족사회에서의 한국여성들은 아직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확대되지 않은 상태에서 핵가족의 좁은 테두리 속에 위축돼 있는 형편이다. 남편이나 자식에게 의존하며 생활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여성의 경제생활이 불안해진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도시의 경우 7, 8할이 핵가족이며 농촌에서도 5, 6할을 차지하여 점점 부부중심의 가구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핵가족 속에서 주부들은 대부분 가족의 의·식·주를 위한 소비생활을 맡고있는데 주택구조와 살림도구의 변화로 주부들의 노동을 많이 줄여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핵가족사회에선 여성들의 여가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어떻게 사회와 연결하여 그 역할을 넓힐 수 있는가가 문제되고 있다.
현재 기혼여성의 경우 재취업의 기회가 적고 또한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가정생활에만 종사하는 주부가 많다. 교육정도가 높은 중류층이상의 주부들은 대개 30대에 이르러 여가가 시작되는데 이들의 이 여력을 지역사회단체활동에 참여시키는 일이 바람직하다.
요근래의 여권신장을 위한 가족법개정 운동이나 가족계획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은 한국여성들의 사회적 의식과 참여의욕이 고조되기 시작했음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여성들의 단체운동은 일반에게 넓게 파고들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여성단체들이 서민층 여성과 일체감을 갖지 못한 것과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개발하는데 있어 지역적 형편에 맞는 단체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성운동은 서민가정의 생활향상과 권익옹호에 직결된 문제로 핵심을 잡아야할 것이다. 모성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남성과 사회에 대해 경제적 생활보장과 지위향상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피해를 받고있는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여성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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