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10걸 제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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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의 조치훈군이 전 일본 「프로」 바둑 10걸 1위를 겨루는 결승 5심기에서 일본의 강자 가등 8단을 내리 세번째 「스트레이트」로 역승했다. 조치훈군은 아직 18세의 소년이다. 그러니까 「군」이라 해도 실례는 아니다. 그런 소년이 일본 바둑계의 손꼽히는 최고 「타이틀」의 하나를 획득한 것이다.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바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영화롭게 여기는 「타이틀」은 본인방이다. 역사도 제일 길거니와 오늘의 일본 기계를 틀 잡은 것이 본인방전이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금이 제일 많기로는 명인전이 있다. 이 「타이를」전의 주최권을 둘러싸고 최근엔 독매와 조일이 겨룬 끝에 그 「파이트·머니」가 1억「엥」 이상으로 올랐다. 명인전의 기보 게재만으로 독자 수가 1백만 명이나 왔다갔다한다니까 그럴 만도 하다.
세번째로 중요한 것으로 십단전이 있다. 그리고 이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지난번에 조군이 아깝게 놓친 일본 기원 선수권전과 이번의 10걸전이다.
어느것이나 3백여명이나 되는 일본의 전문 기사들이 꿈에나 바라볼 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들이다. 이번에 조군이 싸운 10걸들도 절반 이상이 9단들이었고 모두가 20년 가까운 기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번 조군의 승리에는 두가지 큰뜻이 있다. 지금까지 최연소 「타이틀」 획득의 기록은 석전 9단이 가지고 있었다. 그가 명인이 되었을 때 아무도 그 기록을 깨지도 못 할 것으로 여겼었다. 그 기록을 이번에 3세나 젊은 나이로 갱신한 것이다.
더우기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일본의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기계는 몹시 폐쇄적이었다. 오청원과 같은 천재적인 중국인은 「타이틀」을 하나도 얻지 못한 채 끝났다.
그는 조군의 스승인 목곡 9단과 함께 이른바 신포석을 꾸며내기도 했다.
10년 이상을 천하무적이었지만 「타이틀」 전엔 끝내 끼지를 못 했었다.
일본 기원 소속 기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오청원이가 21세 때 처음으로 당시의 본인방과 꼭 한번 대국한 적이 있었다. 흑을 쥔 오는 처음부터 우세했었다. 그러나 종반에 이르러 백의 한 묘수로 결국 두집 차로 졌다.
그때의 묘수는 사실은 본인방의 수제자들이 의논 끝에 찾아내 준 것이었다.
이 사실을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실토한 어느 기사는 일본 기원의 이사 자리에서 쫓겨났다.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런 점에서 조치훈군은 매우 행운아라 볼 수도 있다고 그의 뒤를 밀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앞으로 제2의 오청원처럼 일본의 기계를 주름잡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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