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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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루지」(「rouge」는 「프랑스」어로 『빨갛다』는 뜻이다. 입술연지를 「루지」라고 하는 것도 그 색깔에서 유래한다. 『혁명적 정치가』를 「루지」라고도 하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붉은 색은 사람을 흥분시키며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다. 필경 그런 색채의 감정을 연상한 별명인지도 모른다. 물론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갱이」의 뜻도 있다.
지금 「크메르」를 석권하고 있는 「크메르·루지」는 이를테면 별칭이다. 공식명칭으로 밝혀진 것은 「캄푸치아 민족통일 전선」이 있다. 이들을 속칭 「크메르·루지」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 세력의 주류는 「크메르·이살라」(Khmer Itsala)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캄보디아」의 혁명파 세력으로 1955년엔 인민당(프라체아촌)을 결성하고, 그 뒤 「크메르·베트민」을 거쳐 1967년부터 이른바 무장해방투쟁을 강화했다.
「크메르·루지」의 실세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시아누크」는 12만명의 병력을 가졌다고 호언한 일이 있지만, 그것은 수세일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미국의 CIA는 오히려 이보다 더 많은, 약 2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무튼 1970년 「론·놀」에 의한 「프놈펜·쿠데타」이후 이들은 「프놈펜」에서 멀지 않은 「콤퐁소프」성의 중심지에 있는 「오랄」고지에서 회의를 열고 이른바 「해방투쟁」을 총괄했었다.
오늘 「론·놀」의 「크메르」는 이 「크메르·루지」세력에 밀려 촌각의 운명을 다투고 있다. 한낱 망명정객의 신세이던 「시아누크」가 한때는 그의 정치적 탄압까지도 받아야 했던 지하의 「루지」세력과 야합한 것은 어딘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본사 「워싱턴」특파원의 보도에 따르면 이제 가물거리는 여명을 지키고 있는 「크메르」정권의 한 고위관리는 「키신저」국무장관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프놈펜」을 철수하는 미국대사 편으로 전달된 이 편지는 미국 상원세출위에서 「키신저」에 의해 16일 공개되었다. 「키신저」는 그 편지를 읽다말고 기어이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기억해 주기 바란다. 만약 내가 이 자리에서, 내가 사랑하는 조국에서 죽어간다 해도 인간은 태어나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비극 이상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고위관리는 탈출용 비행기를 제공하겠다는 한 미국친구의 제의를 물리치고 이 순간에도 「크메르」를 지키고 있다. 그는 미국이 자유를 선택한 국민을 포기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고 읊조렸다.
망명정부의 승리, 「론·놀」의 패주, 「발리」섬의 호유, 금괴 밀송의 실패, 피난민의 아우성, 그리고 이 마지막 한 장의 편지….
「크메르」정권 5년의 시말. 그 내용을 읽어보고 가슴이 무겁지 않은 자유시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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