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으로 쓴 ‘3通’ 제안문 … 탄원루이, 양안 화해 초석 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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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호 29면

타이완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告臺灣同胞書)를 의결한 전인대 3중전회 개회식. 앞줄 왼쪽부터 왕둥싱(汪東興), 덩샤오핑(鄧小平), 화궈펑(華國鋒), 예젠잉(葉劍英), 리셴넨(李先念)과 쑹칭링(宋慶齡). 1978년 12월 18일, 베이징. 이 편지는 인민일보의 탄원루이가 밤늦게 술 마시다가 불려가 이틀 만에 작성한 것이다. [사진 김명호]

1978년 12월 16일, 중국과 미국은 수교에 합의했다. 미국도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며 타이완의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중국과 타이완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끌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63>

전인대 3중전회(三中全會)를 하루 앞둔 12월 17일 밤, 당 지도부와 회동을 마친 사회과학원 원장 후차오무(胡喬木·호교목)는 인민일보 총편집 탄원루이(譚文瑞·담문서)의 소재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탄원루이는 명문 옌징대학(燕京大學) 신문학과를 졸업한, 자타가 인정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였다.

화가 딩충이 그린 탄원루이의 초상.

화가 딩충(丁聰·정총)의 집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겨울밤을 즐기던 탄원루이는 후차오무가 찾는다는 연락을 받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차오무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글을 도맡아 쓴, 당대 최고의 어필(御筆)이었다. 냉수 몇 사발 들이켜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가는 도중에 몇 차례 넘어지다 보니 술이 깼다.

후차오무의 설명은 간단했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 동지가 임무를 배분했다. 새해 첫날, 전인대 상임위원회 명의로 “타이완 동포들에게 고하는 편지”를 발표한다. 3일 안으로 초고를 완성해라.” 주의사항도 잊지 않았다. “타이완의 동포와 당국이 대상이다. 당보(黨報)나 사론(社論)에서 흔히 쓰던 용어는 사용하지 마라. 쉽게 쓰되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교훈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주의해라. 어조는 완곡하고 화약냄새가 없어야 한다. 문언(古文)과 현대문(白話)를 혼용해야 문장에 품위가 있다.”

탄원루이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를 되새기고, 정(情)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내용이면 됩니까?” 후차오무는 “중국에 너 같은 언론인이 열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며 빨리 가서 초안이나 잡으라고 웃었다.

팀을 구성한 탄원루이는 이틀 만에 약 1800자 정도의 초고를 완성했다. 말미에 “조속한 시일 내에 군사대치를 끝내고 서신왕래(通郵)와 직항로 개설(通航), 교역(通商) 등 3통(三通)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1949년 이래, 마오쩌둥 어록을 보물처럼 옆구리에 낀 채 “바나나 껍질이나 먹고사는 타이완 동포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목에 핏줄들을 세우고, 타이완에서는 반공대륙(反攻大陸) 구호가 거리를 뒤덮을 때였다. 30년 후에 3통이 실현되리라는 상상도 못했다.

12월 26일, 전인대 위원장 예젠잉(葉劍英·엽검영)이 주재한 전인대 상무위원회 5차 회의는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임위원회가 타이완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中華人民共和國全國人大常委會告臺灣同胞書)’를 통과시켰다.

중·미수교 발효 첫날인 1979년 1월 1일, 중공은 “친애하는 타이완 동포”로 시작되는 편지 전문을 인민일보에 발표했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1979년 새해를 맞이해 우리는 조국 대륙의 각 민족과 인민을 대표해 동포들에게 안부와 충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옛사람은 해마다 명절이 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평소의 배는 된다고 노래했다. 새해의 즐거움을 누리다 보니 친 골육인 타이완의 부로(父老)와 형제자매들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타이완 동포들의 심정도 같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더해질 것이다….

1949년 타이완이 조국과 분리된 후 우리는 서로의 소식조차 알지 못하고, 왕래가 단절됐다. 친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민족과 국가, 인민들은 거대한 손실을 입었다…. 근 30년간 타이완이 조국에서 분열된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 하늘이 내린 재앙이 아니다. 민족의 이익과 원망(願望)에 위배되는 이런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타이완과 대륙에서 생활하는 중국인이라면 개개인 모두가 민족의 생존과 발전, 번영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빠른 시간 안에 분열 국면을 끝내지 못한다면 무슨 낯을 들고 조상들을 대할 것이며, 무슨 말로 후손들에게 변명할 것인가. 민족에 천고의 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통일의 대업을 위해 타이완의 현실과 각계 인사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합리적인 정책과 방법으로 타이완 동포들에게 손실이 가지 않게 하겠다…. 그간 타이완 당국은 일관되게 하나의 중국을 견지하며 타이완 독립을 반대했다. 우리도 통일조국의 건설이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바꾼 적이 없다. 합작의 기초로 공동의 입장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다. 타이완 당국도 민족의 이익을 위해 통일에 고귀한 공헌을 해 주기를 희망한다….

그간 해협을 사이에 두고 발생했던 군사대치는 인간이 만든 긴장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오늘을 기해 진먼다오(金門島)와 주변 도서(島嶼)에 대한 포격을 전면 정지하라고 인민해방군에게 명령했다….

장기간에 걸친 단절로 대륙과 타이완의 동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종 불편한 상황을 조성해 왔다. 멀리 해외에 있는 교포들은 관광과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대륙 방문이 가능하다. 도대체 지척간인 대륙과 타이완의 동포들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런 울타리가 계속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편지를 주고받고, 항로를 개통해서 쌍방의 동포들이 직접 만나 소식을 주고받고,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고, 학술과 문화, 체육의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희망한다….

타이완과 대륙은 원래 한 경제권이었다. 우리는 타이완 경제가 날로 번영하기를 희망한다. 교류가 활발해지면 양쪽 모두 이익은 있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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