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위장이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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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나 인간은 이와 반대로 높은 생활수준을 찾아 이동하게 된다. 때로는 안전과 자유를 찾아서, 또 때로는 창조적 활동무대와 자립발전의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해외이주의 경우에도 이의 예외일수는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내인구문제의 해결이나, 또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개발·기술협력의 요원 파견이라는 관점에서 이민을 적극권장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도 이민 장려정책을 쓰고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나라는 주로 이민흡인력이 강한 북·남미 주에 농업노동자와 기술자들을 이민시키고 있는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이민정책의 목표와 취지에 어긋나는 기형적 이민현상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도피성 위장이민」인 것이다.
조국을 버리고 형제동포를 배신하는 이들 족속들은 주로 부유층과 특권층 일부인사인데 이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최근 수년 내의 일이다.
상당한 수의 사회저명인사와 지도급인사들의 해외도피를 위한 위장이민이 사실로써 드러나 말썽이 일어나자 정부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주관하에 법무·외무·보사 등 관계부처공동으로 이의 색출작업에 착수해 이미 1백여 명을 적발,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부도덕은 계속 근절되지 않은 채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 자행되어 왔으며, 또 다시 몇몇 부유층인사의 위장이민사건이 드러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있다.
정부는 이 도피성 위장이민사례에 대한 일제수사에 착수하는 한편, 이민관계법규와 규정을 통합, 통일된 해외이주법을 제정하고 해외이주자의 기록「카드」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나 법적 규제가 앞으로 과연 얼마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이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그 거개가 부유·특권층인데다 어느 의미에선 사회기풍 자체가 그것을 조장하고 있는 느낌조차 있기 때문이다. 이 계제에 국민으로서는 이 같은 위장이민의 전모가 분명히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며, 그런 비애국적 행동이 창궐하게된 사회풍토 자체의 광정을 단호히 요구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위장이민의 사례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이 있는바, 이민은 갔으나 본인이나 가족의 생활근거를 모국에 두고 수시로 드나들면서 사업을 하는 양 꾸며 재산을 도피시키거나 가족의 병역을 면탈케 하는 것 등이 그 하나이고, 복수여권을 소지한 것을 기화로 들락날락 하면서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이 둘째이며, 그리고 출국 후에도 가족·친지 방문 등의 명목으로 수시 왕래하는 기회주의적인 사기 이민이 그 셋째이다.
그 어느 것도 막대한 재산을 외국에 도피시키며, 국민의 전반적인 사기를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커다란 반사회적·배족적인 행위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국가의 혜택을 많이 누려온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정이 불안하다하여 안전한 외국으로 이민가려 한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내 세우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특권층·부유층 인사들의 작태는 여타 국민들에게 패배의식과 좌절감을 주어 국민의 단합을 저해하는 이적행위로서 마땅히 엄중한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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