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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고대문명 유적 훼손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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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합군의 '충격과 공포'작전이 본격화하면서 이라크에 산재해 있는 고대 문명 유적들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이라크는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로 꼽히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 고대 왕국의 유적들이 전역에 산재해 있다.

미국.일본 등 6개국 1백여명의 고고학자들은 21일 성명을 통해 "공습으로 문화유산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분쟁지역에서 문화유산을 우선 보호할 것을 규정한 국제협약인 '헤이그협약(1954년)'을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연합군의 주요 공습목표가 된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은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이며,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도 바그다드 남부에 위치해 있어 파괴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우려했다.

이라크에는 바빌론.모술과 같은 고대 왕국의 유적뿐 아니라 8~10세기께 전성기 이슬람 왕조의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연합군 공습의 주요 대상인 바그다드는 이슬람제국 압바스왕국의 수도로 고궁.성벽.모스크(회교사원) 등 이슬람 유적들이 가득 차 있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전쟁 전 미 국무부에 공습을 피해줄 것을 요청하는 5천여개의 이라크 중요 유적지 명단을 전달했다.

학자들은 또 "연합군의 공습뿐 아니라 무법상황에서 발생하는 문화재 약탈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2년간의 유엔 경제제재 기간 중에만 이라크의 13개 박물관 중 9곳에서 3천여점의 유물들이 약탈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현재까지 고대 유적지들은 공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도 "이라크의 무기가 그곳에 있다면 합법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21일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이언티스트가 보도했다.

실제로 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남부의 기원전 2000년께 도시유적인 우르는 이라크 공군의 미그기 기지가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잇따른 공습을 당하기도 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이라크가 이들 고대 유적을 인간방패와 같은 용도인 '문화방패'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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