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수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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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월남의 전쟁이 빚어내고 있는 아비규환의 참상이 아침저녁 전해져와 우리들의 안방에까지 어두운 구름을 끼게 하고있다.
특히 부상자나 피난민이 처해있는 극한적인 상황은 바로 목불인견의 장면들이어서『우리도 꼭 저랬지,6·25때…. 』혼자 중얼대어보니 마음은 더욱 참담해진다. 대저 인지를 가지고는 이 땅 위에서 전쟁을 없앨 수는 없단 말인가.
수도꼭지를 비틀면 더운물이 나오고 순식간에 수 만리 길을 오갈 수도 있으며 앉아서 지구 저 끝의 사람과 대화도 가능한 우리의 문명은 이렇듯 우리들의 안락에 이바지하고 있다.
의학은 발달하여 치료중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마취과·「페인·클리닉스」라는 분야도 따로 있다. 이것으로 보면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그 아픔을 끔찍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성품을 지닌 것도 사실이기는 한 모양이다.
같은 문명의 산물이지만 전쟁무기는 사람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잔혹하다고도 뭐라고도 말로는 할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을 주는 데에만 이바지하고 있다. 살상의 방법은 그 야만성을 극복하기는커녕 점점 더 야만이기를 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옛날 침략과 정복이 미덕이었던 시절의 생각을 사람들은 이제 명백히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력에 의한 문제해결 외에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아둔함,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점인가? 그러나 죽여보지 않고도, 폭격해보지 않고도 그 학생의 크기나 승패나 결과를 계출해 낼,과학적인 무슨 방법은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어린이를 공포로 울부짖게 하는, 약자가 길에 버려지고 청년들은 다쳐 신음케 하는, 그리고 모두들 위에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죽음이 덮치는, 이런 모양의 전쟁이 아닌 전쟁은 있을 수 없겠는가?
수도꼭지를 비틀어 더운물은 안나와도 좋으니 그리고 탈것이 없어도 좋고,전화도 못해 좋으니「문명」은 제발 이전쟁의 끔찍함을 덜기 위해 전력했으면 싶다.
어차피 전쟁은 하게 되면 할 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또한 현금의 인류의 운명이니 말이다.
일본의 거리를 걸으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다보고 나는 일종의 감개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현재 심중에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론 알 바 없었지만, 경제성장인가의 덕분으로 생활도 좀 나아진 듯한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우리가 겪은 6·25동란과는 또 다른 유형의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중년을 넘은 이들은 거의 빠짐없이 가까운 누군가를 그 전쟁에서 죽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었다. 아들을, 형을, 아우를, 약혼자를, 남편을 가깝다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은 저자신보다 더욱 소중한 보람의 근원을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또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 남겨졌건간에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비애와 곤궁에 빠져있기보다는 떨치고 일어나는 편이 말할 것도 없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형편이 한결 나아졌다는 듯한 표정으로 걸어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그네의 마음은 슬펐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역사에 떠밀리어 흘러 내려가는 그 모양이 비감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것은 당사자들의 피를 뿜듯 하였을 통탄의 먼 그림자에의 공감이었을 뿐이었겠지만, 스쳐 지나는 여행자의 맘속에서 오히려 지금은 생생한 감개이기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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