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은 얼마나 버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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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은 군사적 균형이 완전히 깨진 채 그 특유의 얼룩무늬 지도가 두개의 판도로 단순화됐다.
적의 공격전면에 완전히 노출돼 있는「사이공」은 빠르면 1개월,늦어도 4개월 안에 함락될 것이라고 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것도 정부군의 항전능력보다는 공산군의 진격준비 기간을 기준해서 산출해낸 것이다.
공산군은 전쟁주도권을 장악,그들이 선택한 수단과 방법에 따라 언제 어디서라도 전단을 열 수 있는 태세에 있다.
공산군은 월맹정규군22만명과 「베트콩」2O만명등 모두42만명이며 그 중 6개 사단이「사이공」주변에 배치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AK자동소총을 기본 무기로 하는 공산군은 소련계 중「탱크」와 사정15「마일」의 130m포로 장비했다.
정부군은 공칭1백10만명이지만 유효병력은 56만5천명. 그중 절반이 이번 패전기간 중 와해되어 지금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육군은 13개사단 중 7개사단만 남아 「사이공」주변에 4개사단,「메콩·텔터」지역에 3개사단이 배치돼 있다.
「티우」대통령이 거점방어전략으로 전환, 중부고원및 배부DMZ지역에서의 철수를 명령한 것 자체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초「티우」작전구상은 인구가 적고 경제·군사적 가치가 희박한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와 항만·평야를 완벽하게 장악, 실효성 있게 방어하자는 것이었다.
거기엔 병력의 집결, 보급로의 단축, 연료·탄약의 절약, 전략예비력의 확보 등 많은 군사적인 잇점이 있다.
문제는「티우」가 공산군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사전계획 없이 서둘러 철수령을 내린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정부군 지휘관들은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비로소 철수계획을 알고 한번 후퇴소식이 전해지자 전열은 겉잡을 수 없이 흩어졌다. 그들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후퇴할지조차 몰랐다.
군당국은 1차적으르는「다낭」 북방에, 거기서 실패하면「달라트」-「나트랑」선에 주저항선을 선치할 계획이었지만 병력이 집결하기 전에 공산군이 먼저 점령해버렸다.
참패의 원인에는 또 공격력과 공정연·해병대 등 기동타격력을 활용하지 못한데도 있다.
「다낭」에 있던 공정대와 해병사단은「사이공」에 이동되고 전폭기들은 출격한번 못한 채 1백여대가 폭탄과 함께 적의 수중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들리는 말로는 군부「쿠데타」를 겁낸「티우」가 공군기의 출격을 못하게 했고 공정대는 근위병으로 불러들였다는 것.
공산군의 전법도 특이했다. 농촌과 산간지방을 지배한 그들은 먼저 도로를 차단, 진지를 포위한 다음 일제 공격을 가해 사살·생포하거나 개별적으로 분산시켜 부대단위로 이동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진격속도도 예상외로 빨라 정부군은 탄약과 장비를 수송하거나 폭파할 여유를 못 가져 비행기2백여대, 포차를 포함한 차량 1만여대,「탱크」2백대, 1백75mm 거포 12문과 다량의 유류·탄약 등 6억「달러」이상을 노획당했다.
공산군은 강성1명이 수개사단을 동시에 지휘, 신속하고 유효적절하게 병력을 운용하는 등 새로운 지휘방식을 채택, 주목을 끌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공권과 제해권이 정부군에 있고 공산군의 보급로가 길어졌으며「델터」나 「사이공」주변의 평야지대에서는 산악지대와 달리 공군력으로 적의 주력「탱크」를 저지하기 쉽고 공산측은 점령지 평정사업에 힘을 분산시켜야 하는등 이유를 들어 정부군이 신속히 사기를 회복하고 전열을 재정비하면 잔여지역만이라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펴고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규모원조가 없는 한 전쟁지도체제의 무능, 군의 기강해이, 만연된 패전의식등으로 전투력회복이 어렵다는 비관론이 아직은 우세하다.
점령지의 통일적 지배가 가능해진 공산측은 「라오스」나「크메르」를 우회하지 않고도 후방보급기지인 월맹에서 직접 전선에 군수불자를 육질할 수 있으며 해안포의 엄호아래 연안을 따라 해상수송도 가능해졌다.
정부군은 우세한 공군력과 군력을 유효하게 활용,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차단한다면「사이공」합락을 상당기간 지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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