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없는 「연구소」 너무 많다<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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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국 각 대학에는 2백여 개의 각종 부설연구소가 있다. 그중 에는 괄목할만한 연구실적을 올리고 있는 연구소도 없지 않지만 설립한 후 논문집 한 권 못내고 간판만 내건 곳도 있다. 실적이 없는 대부분의 연구소 운영은 그 원인이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연구소의 실태를 살펴보면―.
연세대 문과대 성래운 교수(교육학)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에 『대학운영의 정상화』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진실을 찾아내는 일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몇몇 학술연구소가 대학과는 상관없이 운영되고 있다. 교수에 의한 학술연구의 특성은 연구비 타내기 위주의 연구경향으로 연구비를 주는 기관 또는 사람의 의중을 살펴 제목을 정하고 연구를 진행시키는, 한마디로 어용연구가 많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사명 가운데 첫째로 손꼽히는 게 학문 연구이고, 대학과 사회를 기능적으로 연결하여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기관이 바로 대학연구소이다.
그런데 일부 대학의 실적 있는 연구소까지도 최근에는 상아탑의 순수한 학문연구를 뒤로 미루고 출판사업 등에 몰두하여 대학연구소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2백 개를 넘는 대학연구소 가운데 태반은 간판만의 연구소인 실정이고 몇 년 간 논문집 한편도 내지 못한 연구소가 허다하다.
대학 불신을 초래할 만큼 부실한 대학연구소도 많다. 대학연구소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주요원인은 우선 연구소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과 재정적 뒷받침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대학이 외형적 발전에만 치중하고 단기효과에만 급급하여 장기적인 투자에 의해 실효를 거두는 연구소 육성에 소홀하여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특수연구소가 학문 연구상 필수적이지만 지나치게 특수분야로 세분화된 나머지 연구소가 일개대학에 20여 개씩 난립하게 되고 연구비 지원이 어려워져 운영비조달에 급급하게돼 연구소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모순을 가져온 것이다.
대학연구소의 연간 예산 면을 보면 평균 50만원 선에 불과하다. 연구소의 재정은 ⓛ자체기금 ②외부용역 연구비 ③대학 보조금으로 편성되는데 거의 대부분의 연구소는 대학 보조금만으로 유지되고있는 실정이다.
겨우 10만∼20만원의 대학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어느 연구소는 전화 받을 사환 한 명 못 두고 교수실에 연구소 간판만 걸어놓는 예도 있다. 학교에서는 연구소가 대외적인 선전자료로도 이용되므로 어떤 뚜렷한 기준도 없이 마구 설립허가를 내는 경향이 있다.
연구비 염출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외국기관의 연구비로 유지되는 대학연구소가 상당수 있는데 외국의 연구비 보조를 받는 연구소는 그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5·16 이후 정부는 민족사관 정립과 국학진흥에 앞장서 대학연구소에도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소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연구소의 본래의 기능을 정상화하는데는 힘이 미치지 못했다.
연구비를 지급 받는데 연구제목 선정에서부터 문교부의 눈치를 살펴야하고, 또 연구업적 평가도 없이 속칭 「어용교수」들에게 연구비를 나눠줌으로써 문교부는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연구소 설립을 조장했다고 일부학자들은 비난하고 있다.
이같이 빗나간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몇 대학에서는 유사한 연구기관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무도 소장직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또 내놓으라고 강요할 사람도 없었다』는 대학당국자의 실토이다.
건당 5천 원 내지 1만원의 수고료를 받고 연구소 교수의 논문을 대신 작성해주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젊은 조교들은 『대학의 특성을 살려 유사한 연구소를 과감하게 통합·폐지하고 강의교수와 연구교수를 「로테이션」하고 장기적으로 연구비를 투입해야 대학연구소가 재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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