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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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우리 나라의 정당제도는 흔히 「1·5 당 제」로 비유되곤 한다. 정당이 하나 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강력한 집권당과 제구실을 못하는 반쪽 야당이 파행해 왔다는 의미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어떠한 정당제도가 꼭 이상적이냐에 대해선 물론 이설이 있을 수 있다. 복수 정당제도가 원리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요체이기는 하지만, 양당제와 다당제에 각기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와 같이 정당이 설 수 있는 기반이 비교적 단색적인 사회에서는 다당제도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강력한 집권당이 있는 나라에서 비슷한 색깔을 가진 야당의 다수분립은 역설적으로 「1·5 당 제」를 자초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신민·통일당의 합당원칙 합의는 건전한 양당제도 확립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된다.
국민의 소수 의견을 대표하고 정부의 독선을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의 역할은 민주정치의 기본요소 중의 하나다. 이러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마땅히 야당이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집권당을 견제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다.
수권의 「비전」을 갖춘 야당이라면 정치의 「룰」을 지키려는데 솔선하는 법이다. 반면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정권에 접근할 수 없는 야당은 「룰」을 벗어나는 투쟁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구 선진국에 있어서도 소수당이 대개 좌나 우간에 급진파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우도 통일당이 『9대 국회를 해산하고 즉시 총 선거를 실시하라는』 등 야당 중에서도 더 급진적인 주장을 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야당의 통합은 궁극적으로는 집권당에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짧게만 보면 상대 진영의 단결은 경계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정치의 파행현상을 극복하려면 야당이 여유를 회복하여 국정에 대해 공동책임을 느끼도록 유도 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여당이 야당을 무조건 적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성실한 동반자로서 환영하는 금도가 아쉬운 것이다.
윤보선·김영삼·김대중·양일동씨의 4자 회담에서 야당통합이 극적으로 합의된 까닭은 민주회복전선의 대동단결이란 거역할 수 없는 명분 때문이었다.
이러한 대의명분 때문에 신민·통일당 내부의 불만도 침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통합의 방법을 놓고 흡수통합이니, 합당이니 하는 문제로 양당에서 약간의 왈가왈부가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렇게 소절에 구애되어 대국을 그르치는 일은 만의 일이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야당은 국민의 적극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내재적인 소지를 개발하는데 더욱 힘을 쏟아야하겠다.
지금까지 야당은 집권당에 반대하는 일부 국민 층의 반사적 지지에 주로 의존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당이 싫어서 할 수 없이 지지한다』는 식의 반사적 지지만으로는 수권 정당·기대 받는 야당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국민의 보다 적극적인 지지를 개발하려면 우선 정당인의 통합뿐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생생한 활력소를 받아들이는 수혈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수혈이란 이미 은퇴한 원로들의 총망라가 아니라 각계의 양식 있는 신선한 「엘리트」의 피를 공급받는다는 뜻이다.
또 야당의 통합은 양적인 확대뿐 아니라 야당의 사고와 행동양식이란 수적인 차원의 발전이 병행될 때 의미가 있다. 야당 혼자의 책임은 아니지만, 정치의 영역과 「룰」을 벗어난 강경 투쟁만이 선명한 야당의 「이미지」로 통용되던 풍조는 지양되어야겠다.
야당의 통합이 정치가 정치권으로 회귀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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