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의 본격적 양식화를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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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화 이후 한국에는 세가지 연극 양식이 줄기를 이루어 왔다. 창극·신파극·정통 신극이 그것인데 이 셋은 각기 독특한 관객 층을 상대로 한 양식들이었다. 이중 1908년에 시작된 우리 나라의 자생적인 창극은 왜곡된 근대화의 와중에서 소외되어 자연히 서양 정서에 적 게 물든 부녀층을 상대로 명맥을 이어온 극이었고 신파극은 일본의 신파를 그대로 받아들여 토착화된 대중적인 극이었으며 1920년 초부터 출발한 정통 신극은 지식층을 상대로 한 이념적인 극이었다. 6·25 전쟁을 겪고 TV 수상기가 많아지면서 그간 신파극은 관객을 영화로 「텔리비젼」으로 뺏겼으며 도시 변두리와 시골에서 그런대로 한국적인 낭만과 환상을 심어주던 창극단들도 한때는 20여개 극단이 전국을 돌만큼 번성했지만 이제 거의 소멸되고 국립창극단만이 존속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 한국 연극계에는 가장 관객수가 적고 그나마 지식층만을 상대로 했던 정통 신극이 외줄기로 전개되고 있다.
극 자체는 일제 때나 오늘이나 실험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고 관객은 대학생으로 한정되어있다.
관객 없는 연극이 성립될 수 있는가?
한국 연극은 이대로 가도 좋은가?
한국 연극은 지금 「딜레머」에 빠져 있다. 두가지 각도에서 한국 연극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첫째는 예술의 궁극적 목적인 사회 개혁에 도달하는 길. 둘째는 관객 층의 「갭」을 극복하는 길이다.
손자부터 할머니까지 모든 연령층이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이 공연되어야 하는데, 그런 연극은 갖가지 사조를 넘어서 불변의 우리 전통 생활·정서·습속이 서려 있는 창극이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난해 창극 『수궁가』를 공연하고 지난 23일까지 『배비장전』을 공연한 창극 정립 위원회들이 벌이는 일련의 활동은 특히 큰 가능성을 던져준다.
19∼23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배비장전』에는 정통 신극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동양화적인 무대 배경은 부족한대로 연극 미학을 보여주었고 시조·잡가 등이 군데군데 차용되어 이루어진 사설이 포함된 판소리로 엮어지는 극 전개는 창극이 한국식 「오페레타」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일본 고전극인 「노」 (능)나 중국의 창사 등의 극요를 약간 도입한 점, 우리 나라 고전 무용과 가면극의 「리듬」을 다양하게 배합한 점은 창극의 양식화를 모색한 연출가 이진순씨의 개안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대거 출연한 명창들은 아직 완전히 신파조의 연기를 벗지 못했으나 그런 대로 진일보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애랑」역의 신인 김동애는 창극 배우로 기대를 갖게 한다.
유민영 <한양대 교수·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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