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분수대

갠 날 돛을 고치지 않으면 통일은 대박 아닌 쪽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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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비둘기 자세’란 게 있다. 남북한의 비둘기 생김새가 정녕 다르지 않을진대, 그 자세의 의미는 남북이 천양지차다.

 남쪽 것은 요가의 한 동작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등 뒤로 팔을 넘겨 뒤쪽 발을 잡아 끌어올린다. 앞가슴을 쭉 내민 비둘기 모습과 닮았대서 붙은 이름이다. 팔과 다리 선을 가꿔주고 옆구리 군살을 빼는 효과가 있단다. 늘씬한 연예인이 이 자세를 취한 사진이 퍼져 너도나도 따라 하는 동작이 됐다.

 북녘 것은 고문의 한 방법이다.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벽의 고리에 묶는다. 고리 높이가 바닥에서 60㎝ 정도밖에 안 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먹이를 쪼며 걷는 비둘기 모습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배 속에 든 걸 모두 토해낼 정도로 고통스럽다. 실제로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이 자세로 촬영했다가 몸에 마비가 왔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남북의 거리가 이만큼 멀다. 맞붙어 한반도고, 한 뿌리 한 겨렌데 이웃나라보다 더 멀고 더 새 뜬다. 한쪽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쪽은 할까 봐 섬뜩한 비둘기 자세처럼, 말 쓰임새가 다른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밤이면 북한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남한은 빛의 섬이 되는 위성사진은 정서적 거리가 그만큼 아득함을 방증한다. 불 켤 여유가 못 돼서 생기는 빛의 분단이니 체형의 분단은 불가항력이다. 남녘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고 10㎏ 이상 덜 나가는 북한의 10대는 우리네 청소년들과는 거의 다른 인종이 돼버렸다.

 남쪽이 청년실업과 업무스트레스, 노후불안에 떨 때, 북쪽은 굶주림과 질병, 처형의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목숨과 바꾸지 않고는, 최소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 공포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이북 형제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나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지난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북녘땅의 비둘기 자세를 고발하고, 미 국무장관은 어제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곳 북한에선 우리 모두 아주 걱정해야 하는 사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또한 얼마 전 북한의 반인권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묵묵부답이다. 북한인권법을 처리해야 할 선량들이 특히 그렇다. 논의(할 생각)조차 못하고 2월 국회를 넘겨버렸다. 하긴 시급한 남쪽 민생법안 하나 못 건드리는 ‘제로 국회’가 유권자도 아닌 북녘동포의 삶이야 관심이나 있을까.

 하지만 이래서야 대통령 혼자 통일 대박을 외친다고 통일이 거저 와줄지 의문이다. 설령 어느 날 벼락처럼 통일이 찾아온다 해도 대박 아닌 쪽박을 차게 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두렵다. 갠 날 돛을 고치고, 가물에 돌을 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하는 말이다.

글=이훈범 국제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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