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외교의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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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중동 정세와 인지 사태는 하나의 공통된 회의를 안겨주고 있다. 그나마 두 동강이 나 있던 월남의 국토가 재차 양단 되고, 중동 분쟁을 수습해 보려던 「키신저」 외교가 벽에 부닥침에 따라 『미국은 과연 신뢰할 만한 맹방 인가』하는데 대해 심각한 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키신저」 외교의 좌절은 결코 우연한 돌발 사고라고만 할 수 없다. 그의 외교적 연금술은 처음부터 다분히 무리한 방정식을 설정했었기 때문이다. 「파리」 협정 자체가 그 전형적인 사례였다. 「파리」 협정이란 한마디로, 미군이 월남으로부터 철수하는 댓가로 「하노이」는 「사이공」에 대한 무력 전복 활동을 정지한다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을 잘못 판단한 실수가 아니면, 그것을 빤히 알고서도 미군 철수의 출구만 찾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미봉책에 불과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하노이」는 평화 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이공」에 대한 군사 활동을 재개했었는데도 아랑곳없이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멀리 중간에 날아가 있었다.
그러나 중동에서도 「키신저」의 외교술은 더 이상 신통력을 발휘하지를 못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강경파나 온건파가 다같이 「키신저」 처방에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아랍」 강경파의 실지 회복 염원을 누르고 「이스라엘」의 사활이 걸린 전략 요충지 점거를 포기케 하며, 「팔레스타인」 난민의 독립 국가 수립을 무마하겠다는 「키신저」의 구상은 어쩌면 그 어느 일방도 수락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미국의 체면과 석유 이익을 위해 「하노이」 공산주의자들이 군사 공세를 멈추어 주고, 중동국들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현상 동결을 수락해 주었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실상 너무나 일방적인 기대라 아니할 수 없다. 자유 월남이든 중동국들이든 자신의 사활 문제를 눈감아 가면서까지 「키신저」의 체면이나 미국의 석유 이익을 위해 희생할만한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키신저」 외교의 좌절과 더불어 동남아에 대한 미국 외교 정책의 방향은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크메르」의 공산화가 예견되고 「사이공」의 열세가 두드러지면서부터 태국과 「필리핀」등 인접국들은 미군 기지의 철거와 대 중공 협상을 고려하고 있다 한다. 나아가 미국의 「슐레징거」 국방장관은 『동남아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전략적 균형은 미국에 대해 불리하게 변동되지는 않는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동남아가 미국의 세력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경우 동맹국들은 미국의 방위 공약을 불신할 것이며. 인도양과 서태평양·「페르샤」만 일대에는 소련의 군사력이 대신 밀고 들어올 것이다. 더구나 「키신저」가 고배를 마시고 다녀간 중동의 운명은 「제네바」 국제 회의에서 소련의 주도하에 요리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20세기 후반기에 고립주의란 당치도 않은 말이다. 한때의 좌절로 물러서지 말고 미국은 다시금 자유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도덕적 현실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동남아와 중동에서 손을 뗀 다음엔 미 본토와 「유럽」에 있는 핵의 억지력이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이 위급한 때를 맞아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는 서로 책임전가만 하지 말고 우선 월남 전선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입」을 진지하게 고려해 봄직한 일이다. 그것만이 미국을 2류의 군사력으로 후퇴시키지 않는 최선의 결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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