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부머 은퇴 붐…공무원 채용 큰 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러스트=강일구]

홍승활(59) 대구시 안전행정국장은 ‘베이비 붐 세대’다. 1955~63년생인 이 세대의 첫 해에 태어나 스무 살이던 75년 경북의 한 군청에서 5급을(현 9급)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오는 6월 말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공로연수는 정년(만 60세)이 1년 이내인 공무원에게 사회적응 기회를 주기 위해 출근을 면제하는 제도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일부 수당을 제외하고 급여를 받지만 사실상 퇴직한 것이나 다름없다. 홍 국장의 공채시험 동기는 40명으로 전년도의 10여 명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당시 국가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벼베기ㆍ모심기ㆍ지붕개량작업에도 참여했다”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공무원을 많이 뽑았다”고 말했다.

기업체에 이어 공직에도 ‘베이비 부머’의 은퇴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 성장기에 대거 채용된 공무원들이 내년부터 줄줄이 정년 퇴직을 맞기 때문이다.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공무원을 고려하면 올해부터 퇴직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이들은 전국 지자체 공무원의 30%에 육박한다. 덩달아 신규채용 인원도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 정년퇴직자는 1101명이지만 내년엔 1329명, 2016년 1272명, 2017년엔 1362명으로 늘어난다. 60년생이 퇴직하는 2020년에는 1730명으로 치솟는다. 9년간 베이비 붐 세대 퇴직자는 모두 1만3415명으로 한 해 평균 1490명이다. 이는 전체 서울시 공무원(구청 포함) 4만7970명의 28%에 해당하고 한 해 평균 퇴직자 1000명보다 49% 많다. 대구시도 올해 128명에서 내년 259명으로 늘어나는 등 9년간 3148명이 물러난다. 한 해 평균 350명으로 평소 150명보다 2.3배 많다. 전체 공무원 9273명의 34%를 차지한다. 대전시는 평소 90명선이던 퇴직자가 9년 동안 매년 평균 190명씩으로 배 이상 불어난다. 충북ㆍ충남ㆍ경북ㆍ전남 등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양상이다.

원인은 70년대 중반 이후 공무원이 크게 늘어서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도시화로 인구가 늘어나고 행정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구시는 81년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6개 구청이 새로 생겼다. 공무원 수도 3700명에서 5400명으로 급증했다. 서울시 김희갑 인사기획팀장은 “당시 공직에 들어왔던 많은 인력이 정년을 맞으면서 퇴직자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덩달아 신규 채용 인원도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당장 올해 7∼9급 행정ㆍ기술직 등 신규 채용 규모를 지난해 1248명에서 2123명으로 70% 늘렸다. 대구시는 313명에서 598명으로 배 가까이, 전남도는 30% 증가한 1157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올해 신규 채용 인원은 1만3701명으로 지난해보다 13% 늘어난다. 정부 부처도 지난해보다 11% 증가한 416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정구 안행부 지방공무원과장은 “퇴직자 증가에다 복지분야의 행정수요도 늘어 채용 규모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 시험학원에는 수험생이 몰리고 있다. 서울 노량진을 비롯해 부산ㆍ대구 등 대도시 공무원 학원가에는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20% 가량 늘었다. 기업체 취업에서 공직으로 진로를 바꾸는 사람이 많아서다. 서울 K공무원학원 이원규 부원장은 “앞으로 수강생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학원마다 온라인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강의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용 인원 확대를 달갑지 않게 보는 수험생도 있다.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김효진(24)씨는 “채용이 늘어나면 많은 수험생이 몰려 오히려 경쟁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 썰물’ 현상에 대한 우려도 있다. 경험이 많은 고참 공무원이 단기간에 빠져나가면 정책 판단이나 고질적인 민원처리 등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규 채용 급증에 따른 직급별 인원 불균형과 승진 때 극심한 경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영남대 김렬(57ㆍ행정학) 교수는 “무턱대고 퇴직자 수만큼 뽑기 이전에 현재 업무량 등을 분석해 일하지 않는 공무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규 채용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퇴 공무원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이들을 임기제(계약직)로 채용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권삼ㆍ최종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