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꽃망울 터뜨릴 때, 봄은 기지개를 켭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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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 꽃 [중앙포토]

3월이다. 드디어 우리는 겨우내 꽁꽁 묻어 두고 살았던 단어를 꺼내 놓을 수 있다. 봄. 어딘가 허전하다. 봄, 봄, 봄. 연달아 세 번 불러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그래, 봄이 왔다. 꽃피는 봄이 왔다.

 겨울에도 꽃은 있었다. 동백은 눈을 맞으며 피고, 복수초는 눈 속에서 핀다. 매화도 봄의 전령사라 불린다. 그러나 겨울에 피는 매화와 봄에 피는 매화는 품종이 다르다. 예부터 겨울에 피는 매화를 납월매(臘月梅)라 불렀다. 음력 섣달인 납월에 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매화가 섬진강변을 새하얗게 덮는 풍경은 4월이나 돼야 연출된다.

 봄을 시작하는 꽃은 산수유다. 샛노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산야는 비로소 겨울에서 깨어난다. 산수유 피어나는 남도의 아침을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3월 이른 아침 지리산 자락에 들어앉은 전남 구례 산동마을에 들어서면, 김훈의 이 묘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수유 꽃은 아주 작다. 그래
서 산수유 꽃은 무더기로 피어 벌과 나비를 부른다. 노란 꽃대가 먼저 올라오는데, 그 노란 꽃대에서 20∼30개 꽃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난다. 김훈이 산수유 꽃을 보고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나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고 적은 까닭이다. 산수유 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봄이 시작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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