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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익숙한 세대'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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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학창시절 친구 A는 엉뚱했다. 인문학도 주제에 취업은 은행에 했다. 왜 그랬어? “꿈이 있어.” 무슨 꿈? “돈을 많이 빌리는 거야. 그것도 아주 많이. 평생 수십, 수천억원을 빌릴 거야. 그리고 펑펑 다 쓰고 안 갚고 죽는 거야.”

 지금 농담해? 내가 정색하자 A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개똥 철학, 멋대로 경제학이 튀어나왔다.

 “자본주의가 뭐야. 본질이 신용창출이야. 신용은 많이 빌릴수록 커져. 이론적으론 잘 빌리고 갚고를 무한 반복하면 신용도 무한대로 커질 수 있어. 두고 봐. 누구나 빚을 지고 사는 세상, 빚 잘 다루는 이가 최상의 포식자가 되는 시대가 곧 올 거야.”

 작년 말 가계빚이 1021조원, 마침내 공식 통계로 1000조원이 넘었다는 한국은행의 발표를 듣는 순간, 친구 A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대 중반 나눈 대화였는데도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A는 말했다.

“돈은 뭉치면 사고를 쳐. 세상을 쉽게 흔들고 바꾸지.”

그럼 가계빚 1000조원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낼까. 금융연구원의 K박사가 ‘빚에 익숙한 세대(Debt friendly Generation)의 탄생’을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섬뜩했다. A의 개똥 예언이 30년을 뛰어넘어 현실의 문을 열어젖힌 듯했다.

 ‘빚 세대’의 특징은 뭔가. 50대 이상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첫째, 저축보다 빚이다. 어미 배 속부터 빚을 안고 태어난다. 가계빚 1021조원에 작게 잡은 나랏빚이 821조원, 한 사람당 3653만원이 빚이니 말해 뭣하랴.

둘째, 소유보다 임대다. 비싼 집을 살 능력이 없다. 부모 세대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집을 물려받았지만 자식에겐 집을 물려줄 여력이 없다. 고령화의 덫이 발목을 굳게 잡고 있어서다. 그러니 월세살이가 늘어날밖에.

셋째, 자산보다 소득이다. 비싼 주거비용과 타고난 빚은 빚 세대에게 자산 형성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평생 개미같이 일해 번 돈으로 오늘 즐기고 생활하다 죽을 때쯤 집 한 채, 자동차 한 대를 자기 소유로 남기고 떠나는 미국인들의 삶과 비슷해질 것이다(물론 수준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빚 세대의 등장은 이미 되돌릴 수 없어 보인다. 그럼 어쩌나.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만 정공법으로 맞서야 한다. 빚 권하는 사회부터 바꿔야 한다. 나라에선 ‘디딤돌’ ‘생애최초’ ‘전세대출’이라며 싼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못 빌리면 바보요, 안 쓰면 손해다. 빚이 늘 수밖에 없다. 돈을 풀어 주거복지를 해결하려는 단순 발상이 낳은 결과다. 금융회사 역시 다를 바 없다.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해준다. 소득 없는 대학생도 학생증 하나면 신용대출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K박사가 경험담을 들려줬다.

 “캐나다에서 연수할 때다. 은행 한 곳에 몰빵 거래를 했는데도 좀체 신용을 안 열어줬다. 5000달러를 보증금처럼 묻어놓고 월 5000달러까지만 쓸 수 있었다. 4년을 연체 한 번 없이 성실 거래했지만 결과는 5500달러로 한도를 500달러 늘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빚 안 권하는 사회는 말처럼 만들기 쉽지 않다. 가계빚 느는 데도 이유가 있어서다. 나라가 복지에 돈을 덜 쓰면 가계빚이 는다. 나라 곳간 대신 가계 곳간을 터는 셈이다. 정치가 개입해도 쉽게 는다. 경제 성적이 시원치 않은 정권이 선거를 앞두고 흔히 쓰는 수법이 빚 늘려주기다. 소득 대신 빚이라도 손에 쥐여줘야 불만이 줄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카드사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부른 부시 행정부의 초저금리 주택대출이 그런 예다.

 최상의 해법은 성장과 일자리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A의 말마따나 ‘빚 잘 내는 포식자’가 각광받는 날만 앞당길 수도 있다. 이래저래 빚 세대만 더 고달프게 됐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