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당대의 시인들은 망향의 시를 많이 남겼다. 벼슬길에 오르면 그만큼 고향도 멀어진다. 또 전쟁만 있으면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 못한다. 이런 귀 심을 애써 시로 달래려 했던 것이다.
…거두망산월, 저두사고향. 이렇게 이백도 노래했다. 이때 그가 그리워한 것은 고향에 남긴 가족이며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당대의 시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더라도 모두 외국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각에 올라 보니 온 세계가 봄이구나. 강산을 오가는 상춘객들은 내 마음만을 상해 놓는다. 이들은 모든 고향사람들이 아니니.
이렇게 노찬도 객심을 달랬지만 중공 땅 깊숙이 남아 있는 우리네 동포들의 애처로운 망향의 정에 비기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 10일 본보에 귀국을 호소해 온 박규현씨는 3년 동안 고향을 잃고 중공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판명된 재 중공 동포는 75가구나 된다. 그러나 중공에는 적어도 1백만 명 이상의 동포가 살고 있으며 그 중의 반수 이상이 귀국을 갈망하고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이들이 언제나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중공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 이…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을 것으로 안다.』이렇게 박씨는 호소했다.
이미 40년 동안이나 고향을 등진 그들이다. 아무리 이역이라 하더라도 각기 가족을 이루고 있음이 틀림없다. 고향에 부모는 물론이요, 친척이 생존해 있으리라고는 그들도 기대는 별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향을 그리고 귀국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산 좋고 물 맑은 조국의 품을 잊은 적이 없다』고 박씨의 편지는 이어 나간다.
40년이란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만큼 오랜 세월인 것이다. 이미『산 좋고 물 맑은 조국』 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뀌어도 조국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박씨에게는 여전히 아름다운 조국임에 틀림이 없다.
고향이란 말이 안겨 주는「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조국」도 마찬가지다. 박씨에게 있어서는「조국」이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의 뜻을 가지고 있다.『…그 동안 조국광복을 위해 힘쓴 일도 없고 조국 건설사업에도 벽돌 하나 나르지 못한 죄는 크다고 할망정….』이렇게 조국을 그리는 구구절절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거리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동포들의 애환을 짓밟아 가며 비정하게 역사의 수레는 굴렀다.
아직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사할린」에서 돌아온 동포들처럼 조금이라도 그들이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