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독트린」의 검은 측면-NYT 국제문제 해설가 「앤더니·루이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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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음은 「뉴요크·타임스」의 국제문제 해설가 「앤더니·루이스」기자가 현 「크메르」사태에 관한 「키신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글을 전역한 것이다. <편집자 주>
소련은 68년 「두브체크」영도 하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유린하면서 「자매 사회주의국가」가 소련의 영향권에서 빠져나가려 할 때 이에 개입할 당연한 권리를 소련이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이른바 「브레즈네프·독트린」이란 것이다.
그때 미국인들은 소련이 그처럼 야비스럽게 체코침공을 합리화하는걸 보고 혐오감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보면 미국도 「브례즈네프·독트린」에 비견할만한「독트린」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키신저·독트린」이라는 것이다.
이 「키신저·독트린」이란 것은 처음 「칠레」의 「아옌데」정권에 대해 머리를 쳐들었다. 「칠레」사태에 적용된 이 「독트린」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만약 미국의 영향권아래 있던 국가가 그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면 미국은 그 나라의 합헌정부의 전복을 기도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키신저」스스로 1970년6월27일 자신이 이끄는 40인위(CIA비밀활동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칠레」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한나라가 그 국민의 과오로 공산화의 길을 걷게 될 때 미국이 방관만 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크메르」가 겪고 있는 고통은 「키신저·독트린」의 두번째 형태를 드러내 보여준다. 즉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게된 한 정권이 스스로 미국의 영향권 안으로 기어들었을 경우 미국정부는 그 정권이 국민들의 지지를 거의 받고 있지 못 하다든가, 또 국민들에게 무서운 고통을 안겨 준다든가 하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그 정권이 바뀌는걸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한다는 것이다. 「론·눌」현 크메르 대통령은 70년3월 「시아누크」정권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았다.
미국이 그 「쿠데타」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쿠데타」가 성공하자 재빨리 개입했다. 한달 후 「닉슨」은 미군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닉슨」은 미군투입의 목적은 월맹공산군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지 전쟁을 「크메르」로 확대하려는데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 평화롭던 나라에는 전화가 계속되었으며 미국은 그 전화의 주역을 맡아왔다.
「포드」정부는 「론·놀」에 대한 추원을 얻어내기 위해 현재 의회에 굉장한 압력을 넣고 있다. 그러면서 「포드」는 미국정부가 『조국을 외국침략으로부터 방위하고자하는 정부 및 국민들을 도우려는 것』이라고 자신의 정책을 옹호했다.
「포드」만큼 점잖은 사람이 보좌관에게서 이따위 소리를 듣고 또 나아가 그걸 다른 사람에게 떠들어댄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크메르가 외국침략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실상 진실을 뒤집어 놓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프놈펜」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관리들은 크메르 전쟁이 「크메르」인 대 「크메르」인 간의 순수한 내란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부패하고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론·놀」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적 이상주의를 고려할 때 미국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크메르」전에서의 외부 침략자는 바로 미국인이다. 「크메르·루지」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이같은 사실과 함께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세력이 나약한데서 연유되는 것이다.「시아누크」의 실각 직후에는 월맹군이 주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론·놀」에게 제공하고 있는 지원에 비하면 반정부군에 대한 외부의 지원은 적은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이 희망 없는 전쟁터에 추가원조를 쏟아 넣겠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론·놀」이 존속하기만 하면 쌍방간에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적이며 신빙성 없는 논리이다.
1974년 「크메르·루지」의 지도자 「키우·삼만」이 동구를 순방했을 때 「프놈펜」주재 미국대사 「존·디망」은 「키신저」에게 그와 접촉해 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키신저」의 대답은 『노』였다.
「키신저」의 관심은 전쟁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크메르」사람에게 있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쏟고 있는 문제는 만약 크메르가 넘어가면 미국과 또 「키신저」자신의 위신이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로 봐서 유일한 전쟁해결의 길은 「론·놀」의 퇴진뿐이기 때문에 전쟁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 「키신저」는 최후의 「크메르」인까지 싸움을 계속할 용의를 갖고 있다. 최근 「포드」·「키신저」「팀」이 크메르 추원을 호소하고 있을 때 「뉴요크·타임스」지는 지난 5년 동안 「크메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관한 현지 보도를 싣고 있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전전의 크메르의 식량생산량은 막대했기 대문에 제일 가난한 사람도 굶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길거리에는 굶주린 피난민들이 떼지어 몰려다니고 있고 국토는 불타버린 폐허로 변했다.』
이 모습이야말로 인간성을 도외시 한 채 힘과 질서만에 집착하는 「키신저·독트린」의 결과이다. 「키신저」가 현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든 간에 그의 이름은 영원히 「크메르」의 파멸과 연관해서 기억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국민과 「포드」대통령이 「키신저」의 이 흉측스런 가치관에 계속 끌려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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