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평화|백도기<목사·수원YMCA총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10절>
예수는 불건전한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만들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은 물론 당시 그 땅을 지배하던「로마」의 총독이나「헤롯」왕에게 어떠한 제도는 못 쓰겠으니 그걸 고쳐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형벌은 너무 가혹하니 경감해 달라거나 현행 세금제도가 너무 과중한 부담을 주니까 완화해 달라고 진정하거나 요청하지는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 세상의 부당한 제도의 개혁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는 더 근본적인 것을 문제삼고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셨다. 예수는 자기 창고에 재물을 가득 쌓아 놓고 만족해하는 어리석은 부자에게『이기심과 헛된 물욕을 버려라. 네가 오늘 당장 죽으면 그 재물이 너에게 부슨 소용이 있느냐?』고 나무라셨다.
예수는 또 지도자로서의 체통이 없어 민중의 신임을 잃었으면서도 자기의 아집에 들떠 권력의 자리에 집착하면서 부당하게 백성을 괴롭히는「헤롯」왕을 보고, 『여우새끼!』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하마터면 불의한 자들의 습관성 제물이 될 뻔했던 비둘기와 양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바른말을 하자니 일신상에 무슨 해가 미칠게 두렵고 가만히 앉아 되어 가는 꼴이나 보고 있자니 양심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던 한 공회 의원이 어느 날 밤 남몰래 예수를 찾아왔다.
그는 예수에가 자기의 마음을 열어 보이며 호소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대낮에는 당당하게 예수를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남의 눈에 띄게 되면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면 두려운 사태가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를 향해 예수는 서슴없이『당신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처세방법이나 행동양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상에 새로운 행동을 수반할 줄 아는 새 사람으로 다시금 태어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제구실을 못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민중의 지도적인 입장에 서서 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공회 의원 같은 권력의 줄에 매달려서『여기서 밀려나면 나는 죽는다!』하고 바들바들 떠는 그 치사한 짓 좀 그만두란 것이다. 『예』할 때『예』하고『아니오』할 때『아니오』하라는 것이다. 그게 통하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소신껏 싸우라는 것이다.
예수는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죽는 것만이 바로 영원히 사는 길임을 밝히 보여주셨다. 그것이야말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자기 몸을 썩힘으로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고 행동해 왔기 때문에 그 당시의 부정한 권력자들, 부패한 종교지도자들, 양심이 마비된 사회지도자들, 폭력으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과격한「테러리스트」들에게 미움을 받아 끝내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예수는 일찍이 우리에게 이 땅위에 하늘나라의 정의와 자유와 질서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내가 먹어도 남이 굶주리면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없고, 우리 중에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부당하게 억눌림을 당하거나 옥에 갇혀 있으면「우리의 평화」는 깨어지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그 깊고 무한한 예수의 교훈을 실행해 나갈 때 비로소 이 땅에서 존재할 의의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