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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세계전략의 일환|주한미군|국방보고서에 나타난「슐레징거」의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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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월남전이 끝나면 미국의군사적인 관심은「유럽」으로 이동된다는 것은 상식같이 통했다. 「닉슨」이나「키신저」는 원래「유럽」우 선의 정책을 추구한사람들이다. 「키신저」의 월남전해결방식은 미국이 그다지 꼴사납지 않게 하루속히 월남의 진구렁에서 발을 빼고 미국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향인「유럽」으로 군사력과 국가자원을 돌리자는 것이었다. 「닉슨·독트린」이라는 것도 미국의 이런 초조감을 보통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전문적인 술어로「키신저」가 창안한 것이다.
「키신저」는 월남전을 어정쩡하게「해결」해 놓고 바로 1973년을「유럽의 해」라고 선언했다.
한국이나 다른「아시아」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슐레징거」의 국방보고서가 비상한 관심을 끌만하다는 것도 월남에서 발을 뺄 때에 얽힌 이런 배경 탓이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베트남」에서「패주」하고 월남전체가 공산화되면 김일성은 한반도를 공산화하지 않고는 공산세계에서 체면유지가 어렵다는 극단론을 펴기도 했다고
「슐레징거」의 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주한미군의 역할이 지금까지의 동북「아시아」방위에서「유럽」안보를 포함한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전략의 중요거점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군의 한국장기주둔까지 의미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한테는 중요하다. 이번 국방보고서에는 여러 해만에 처음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이야기가 쑥 빠졌다.
60년대 후반까지 주한미군은 북한의 침략저지가 중요임무였다. 그것이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일종의 파생효과였다. 69년「닉슨」-「사또」공동성명이후 주한미군의 임무는 일본의 안보까지를 포함하게 됐다. 주한미군은「오끼나와」의 미군과 함께 동북아의 안정의 기둥노릇을 해왔다.
그러나「슐레징거」국방보고서에 나타난 미국의 신 군사전략에 의하면 주한미군의 행동반경은 간접적이기는 하지만「우랄」산맥 저쪽까지 뻗어간다.
「슐레징거」는 74년 2월 하원증언에서 주한미군을 기동 후 비군 화하여 그 일부나 전부를 한국 밖으로 이동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바있는 사람이다. 같은 해 3월 국방성대변인은 주한미군의 규모가 재검토되고 있다고 논평했고 9월에는 국방성소식통이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 설을「워싱턴·이브닝·스타」지에 슬쩍 누설했다. 주한미군이 입에 오를 때마다 그것은 감축 아니면 철수의 방향이었다.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국군현대화계획을 위한 원조자금을 요청할 때마다 한국군의 현대화가 미군감축의 전제라고 암시했다. 지난 몇 해 동안의 국방보고서마다 그런 입장이 강조됐다. 미국은 주한미군을「뜨거운 감자」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제 행정부는 한국군 현대화의 필요성은 그대로 역설하면서 주한미군의 존재이유를 세계적인 군사전략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미군한국주둔 장기화의 필요성을 주장할 징조 같다
「슐레징거」장관은 특히 중공이 미군의 계속주둔을 환영한다고 말했다.「키신저」장관도 73년 9월 의회에서 같은 말을 한바 있다.
「슐레징거」와「키신저」가 그 정도의 분명한 표현으로 말을 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중공이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양해하거나 환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지난 1월에 발표된「맨스필드」의원의 중공보고서만은 중공이 주한미군의 지체 없는 철수를 주장한다고 말했지만 그런 의견은「워싱턴」에서는 설득력 없고 교조적인 소수파 의견으로만 통한다.
미국이 소련군 20개 사단을「아시아」에 발 묶어 두고자 하는 정도로 중공은 소련군 1백60개 사단을 모두「유럽」쪽에 발 묶어 두기를 바란다는 방정식정도가「맨스필드」보고서와 합치할 뿐이다.
소련과 중공이 국경지대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대치하고 있고 중공-일본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중공이 한반도주변의 동북「아시아」에서 세력의 진공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과 대만의 미군을 중공은 구별하고 있다.
물론「유럽」안보가 주한미군의 간접적인 행동반경 속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자체가 그대로 미군의 항구적인 한국주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슐레징거」구상대로 미군을 기동 후 비군 화하여 한국에 계속 주둔시키면서「아시아」의 경찰 군 노릇을 하게 할 수도 있고 그 일부나 전부를「오끼나와」「괌」「하와이」등지로 이동시키는 것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행정부는 항상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군사적인 이유 말고도 정치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키신저」와「슐레징거」의 증언대로 중공이 미군의 주둔을 환영한다면 강국들의「데탕트」를 위해서도 주한미군 현 수준유지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럴 경우 큰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미 의회가 행정부의 그런 입장을 받아들일 것인지 또는 미군의 장기주둔이 분명한 분위기 하에서 북한이「유엔」동시가입,「유엔」군사해체,「유엔」평화감시 단의 DMZ주둔, 남-북 대화 같은 현안들을 다룰 때 이쪽의「힘의 입장」으로 어느 정도 현실적인 평가를 하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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