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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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가 지금 쓰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이 원위치와는 3백m쯤이나 틀린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제는 다 지난 일로만 여기고 싶은 일제의 잔재가 해방 30년인 오늘, 지도상에 나타날 줄이야. 새삼 주체를 주장할 시효도 넘은 게 아닌지, 낮이 붉어질 지경이다. 한편 어쩌다 지도 하나도 똑똑히 만들 줄 모르는 나라에 먹혔을까 하는 분한 마음이 되살아 난다.
우리가 우리의 지도에 관심을 가진지는 상당히 오래인 듯 싶다. 고려숙종 6년(1101)에 주조한 은화인「은병」은 1근의 은으로 우리지도 모양을 만들었다. 과연 어떤 형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입이 넓어「활구」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을 보면 함경도지방의 모양이 제법 나타난 듯도 하다.
사실 인류가 정확한 세계지도를 갖게된 것도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세계사에서 말하는 서세동점의 물결을 따라 우리도 차차 서양에 알려지게는 되었지만 한반도를 명기한 지도는 1568년에 비로소 나타난다. 지금「리스븐」에 보관중인 이「포르투갈」의 고 지도에는 만주대륙 밑에 고구마 모양으로 돌출부를 그려「코라이」(Coray)라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 뒤 17세기에 나온 지도에도 어떤 것에는 일본과 같은 섬으로 그려지기도 하였으니 서양의 과학문명도 거슬러 올라가면 좀 수상쩍은 점이 생기나 보다.
우리의 손으로 지도다운 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18세기의 중엽이다. 이때 정상기는 1백리를 1척으로 표시하는「백리축척」의 법을 써서 제법 그럴듯한『동국지도』를 만들었으니 10수만 분의 1지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 뒤 1백여 년만에 자랑스러운 김정호의『청구도』와『대동여지도』가 나타난다. 특히 그의 만년의 대작인『대동여지도』는 전국을 가로 22층으로 나누어 거기에 10리 방안을 쳐서 상세히 지명을 기입한 정밀한 지도로, 청일전쟁 때 일군의 군용지도로 이용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전하는 바로는 그는 백두산을 비롯한 전국의 높은 산을 여러 번 올랐다고 하니 이것은 바로 원점을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또 빈한한 속에서도 독력으로 이를 판각 개간하여 그 일부를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더니 시체말로 안보를 어지럽혔다고 처형되었다고도 한다. 여하튼 그는 주체니 과학이니 하는 말이 생기기 전에 말없이 평생토록 이 길을 밟아 대 업적을 남겨 놓았다. 일설에는 천주교도라 처형되었으리라 고도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의 생년이나 몰 년조차도 알 길이 없다.
다시 1백여 년이 지난 오늘, 일인이 만든 지도에서 잘못을 발견하였다. 명분을 내걸고 떠들 일은 아닌 듯 하다. 그에게 깊이 머리 숙이고 조용히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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