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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의 거꾸로 선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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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소설가 김훈은 각을 잘 세운다. 이런 식이다. “지방 작가들이 절망하고 있다. 서울이 다 말아먹는 게 아니냐?” “그건 열등감이고 질투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더 이상 사각지대에 방치된 천재는 없다. 눈 밝은 세상이다.” 그는 꼭 애국주의자도 아니다. “어릴 적 6·25 사변 때 8박9일로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열차 지붕에 타고 가던 숱한 생명이 개죽음을 당했다. 객실 안에는 수많은 고관대작이 탔다. 그들은 개밥그릇까지 챙겨 실었다. 우리 조국은 그런 (개 같은) 나라였다.”

 요즘 그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소설가인데 올 연초에 신춘문예 작품은 안 읽었다. 제일 눈에 꽂힌 건 대기업 총수들의 신년사다. 돈 많은 그들이 다음에 무얼 먹고 살지, 끼니 걱정을 하더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했고, LG 구본무 회장은 “지금은 위기 그 자체”라고 했다. ‘신성장 동력’이 소설가의 눈에는 밥 걱정으로 비친 모양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김훈은 “그런데 정작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청년 실업자들은 그들 운명을 사회 탓, 구조 탓으로 돌리더라”고 했다. 까칠한 그의 시선은 지난겨울 눈 내린 거리로도 향한다. “골목이나 집 앞에 할매·할배들만 나와 눈을 치우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눈도 정부가 치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김훈의 시각에 온전히 동의하긴 힘들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기성세대도 적지 않은 구조적 문제들을 남긴 게 사실이다. ‘일자리 미스매치’나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도 그중의 하나다. 좋은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노동시장은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휘젓고 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게 ‘일자리 나누기’ 같은 고상한(?) 처방까지 나오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김훈의 이야기를 ‘꼰대’의 잔소리쯤으로 넘기기는 어렵다. 원래부터 대중의 감수성에 충격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다. 삶과 현실을 무자비하게 파헤치며 이면의 진실을 읽어내는 힘이 있다. 김훈의 눈에는 한국의 뒤쪽 풍경이 거꾸로 서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위기라고 여길 때는 위기가 아니었던 게 다행이다. 어느 시대나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외면할 때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그런 불길한 조짐을 묘사하는 게 작가의 몫이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건 정치가의 일이다.

 한때 우리 정치권은 나름 안목이 있었다(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갈수록 실망스럽다. 민주당은 끼니 걱정을 하는 대기업 총수를 증오하라며 부추기고, 새누리당은 정부가 골목의 눈까지 치워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그렇게 해서 풀릴 문제라면 여야의 안목이 의심스럽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입에 올린 정책이라면 여야의 도덕성이 의심스럽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의 성공을 ‘관용’에서 찾았다. 로마인들끼리 세 차례나 동족상잔의 살육전을 치렀지만 ‘지난 일은 지나간 것’이라고 감싸안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저주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내편/ 네편’부터 가른다. ‘맞다/ 틀리다’의 과학적 사고 대신 ‘마음에 든다/안 든다’의 감정적 판단이 지배한다. 이래놓고 우리 사회가 바로 설 것이란 기대는 어림도 없다.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감이 예사롭지 않다. 사회를 탓한다고 저절로 풀릴 문제일까. ‘꼰대’들이 만든 틀 안에 젊은이들을 강제로 우겨넣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서로 남의 허물을 보듬어 주는 것 말고는 길이 안 보인다.

로마제국은 흔들리면서 1000년을 갔다. 대한민국은 거꾸로 서서 얼마나 갈지 궁금하다.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인지부터 의문이다. 김훈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들리지 않는 세상이다. 대기업 총수가 밥그릇을 포기해 경제가 흔들리고, ‘꼰대’들마저 손을 놓아 눈 쌓인 불편한 거리…. 정치권이 입을 열 때마다 약속하는 이상향보다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다가올 훨씬 현실적인 풍경일지 모른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