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짐승을 모함하는 관리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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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30면

오직 제 안위만 살피는 관리들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들이 연출하는 가장 끔찍한 장면은 자신들의 과오를 무마시키기 위해 사회에 지울 수 없는 불명예를 몰래 남길 때다.

지난해 11월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는 그 이후로 제 짝인 펜자,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낳은 세 마리 새끼와 헤어져 줄곧 방사장에 홀로 격리됐다. 멀리서 펜자의 울음이 들리면 저도 울어서 반응하는 로스토프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 지낸다고 한다. 서울대공원은 로스토프의 노출을 꺼려 방사장 청소도 한 달에 한 번씩만 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기사가 났다. 서울대공원이 로스토프를 영구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죄수로 치면 독방 종신형에 처한다는 뜻인데, 한 소설가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항의가 좀 있자 사실은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고심 중이라고 잽싸게 얼버무리고는 있다. 하지만 취재기자가 로스토프의 영구 격리 결정을 직접 확인하고 기사를 작성했노라 증언하고 있으니, 적어도 서울대공원이 당장 실행만 하고 있지 않을 뿐 그러한 시도를 간 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서울대공원이 아니라 참담하게 돌아가신 사육사와 콘크리트 어둠 속에 외로운 죽음처럼 웅크리고 있을 로스토프다. 반대로 가해자는 자신의 소임이 뭔지조차 모르면서 구차한 자리 보전에만 근기를 부리는 안영노 서울대공원장과 간부들, 그리고 그들이 조장하고 방관한 불합리하고 넋 나간 서울대공원의 시스템,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해친 짐승이라고 해서 저간의 사정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함부로 죽이거나 농락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들 전부다. 경력상 아무런 직무 연관성도 없는 자를 석연치 않은 소문과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공원장에 임명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다.

영구 격리가 그렇게 신통한 판결이라면 그 대상은 당연히 가해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이러니 민심이 천심인지라 인디밴드 출신인 안영노 서울대공원장이 불렀다는 ‘날 뜯어먹어’라는 노래가 문제 아닌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다.

도대체가 이 비극 안에서 한 마리 호랑이 말고는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26년간 곤충관만 담당했던 사육사가 어느 날 난데없이 맹수관으로 발령 난 것이 안 원장이 부임하기 전이라고 해도 어쨌거나 그 비극은 안 원장 체제하에서 벌어진 것 아닌가. 가령 시장으로 취임한 그날로부터 새로 지어진 한강대교가 무너지는 것만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시장이 있다면 애초에 그는 시장이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임명되는 그 순간부터 의무 지어진 환경과 상황을 자신의 신념과 권한을 총동원해 장악하고 무한 책임지는 것이 바로 관료와 리더의 숙명인 것이다.

한 성실하고 유능한 사육사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비린내 나는 관료주의와 비전문가의 낮도깨비 같은 행정이다. 짐승은 생존에 ‘순정’하기 때문에 아귀 같은 인간과는 달리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만약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사단이 났다면 그건 필경 인간이 저지른 짓이다. 동물들에게 동물원은 희한한 지옥일 뿐 광활한 시베리아의 숲과 벌판을 누벼야 하는 호랑이를 기껏 비좁은 여우 우리 안에 가둬 놓았으니 안 미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도덕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맹수에게 인간의 법조문 따위를 들이대다니. 호랑이는 애완견이 아니다. 물어뜯는 것은 호랑이의 유전자인 것이다. 어서 로스토프를 제 새끼들과 짝에게 되돌려 놓고 담당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사육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일부러 그랬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든, 짐승을 마녀재판하는 차마 상상하기도 힘든 야만의 꼭짓점 위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 있다. 향후 그의 선택 이전에 이것은 우리 서울시민의 양심과 수준이 달린 일이다.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에게 제 죄를 덮어씌우려는 관리들 덕에 전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도시에서 사는 시민이 될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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