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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공신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연전 서울 S경찰서 형사과서 있었던 희극 하나. 묵은 빚 30만원 시비로 주먹다짐을 벌인 끝에 상해 맞고소를 낸 채권자 이모씨(37)와 채무자 최모씨(35)가 서로『진짜 피해자는 나』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경찰에 낸 진단서는 채권자 이씨가 10일, 채무자 최씨가 4주. 경상대 중상의 엄청난 차이였다.
결국 이씨는 진단서의 공신력 때문에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교도소에서 풀려 나온 이씨가 매맞은 것처럼 붕대로 위장, 채무자 최씨에게 중장처럼 진단서를 떼준 C의원 원장에게 찾아갔다.
C의원 원장이 이번엔 이씨로부터 4만원을 받고 3주 짜리 엉터리 진단서를 떼어주었다. 『옳다 됐다』며 이를 꼬투리로 잡은 이씨가 의사를 경찰에 고발, 이번엔 의사가 철창 신세를 졌다.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의사까지 공신력을 예사로 헌신짝처럼 여긴다면 민주시민의 자세로서 고쳐야할 일. 『뭐니뭐니해도 돈이 최고다』-.
해방 후 이 땅에 불어닥친 금권 만능주의는 인간의 신의 사랑의 풍토를 어지럽힌데 이어 어느새 길서의 근간으로 삼아야할 공공의 신용-공신력까지 제물로 삼기에 이르렀다. 『외형적 표상(표상)에 진실의 효력을 부여한』공신력은 계약사회라는 현대 사회를 회전시켜 나가는데는 구심점과도 같은 것.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공신력은 바로 그 구심점을 믿을 수 없다는 무서운 불신의 습성마저 심어준다.
공신력을 깎아 내리고 짓밟는 작태는 갖가지. 지정 받을 때와 팔 때가 다른 KS「마크」의 둔갑술, 상품의 질과 동떨어진 과대 광고 행위 등의 악덕상흔에서부터 시민의 법을 지킨다는 방범대원의 절도 행각, 수도·전기 등의 속임수 계량행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변덕 행정에 이르기까지 시세에 맞춰 다채(?)로와 지기만 한다.
그러나 악덕상혼 등의 작폐는 으레 그런 장사꾼의 근성으로 돌린다손 치더라도 공공의 신용을 주고 가꿔 나가야 할 당자까지 공신력에 예사로 등을 대는 것이 더욱 두드러지는 문제.
백색 전화가 한참 달리던 매 서울 S전화국 광장에선 수천명의 청약자를 앞에 놓고 은행 알을 굴리는 수동식 추첨이 실시됐다.
은행 알이 하나씩 빠질 때마다 단장의「마이크」는 번호를 외쳐대고 옆에 세워둔 백지판엔 굵은 색연필 글씨의 숫자가 옮겨졌다. 한창 당락의 희비가 고조될 무렵「마이크」는 분명69번을 외친 것 같은데 숫자 판은 엉뚱한 96번으로 기록된 것이 뒤늦게 드러나 소동이 났다.
당자가 책임과장 방을 밀치고 들어가 낙방으로 둔갑된 화풀이를 하자 과장의 설득은 또 한번 엉뚱한『선생님 제발 가만 계세요. 전화 놔드리면 될거 아닙니까』당첨으로 기록된 번호에 한해 전화를 놔주는 추첨의 공신력 자체가 『까짓 것』뭉개진 실례.
주택추첨, 각종자격 시험의 부정도 같은 실례>
서울 S역 앞의 용지가 불하되기 전의 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30여년 동안 거상들의 뒷바라지 한 끝에 몇억의 재산을 이룬 사법대서사 S씨(50)도 숱한 경쟁자들에 끼여 줄을 댔다.
교제비를 물쓰듯 한 결과 그는 마침내 그 부처장으로부터 불하 내락을 받아내는데 성공, 『이제는 일어섰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경쟁자를 물리친 기쁨도 잠깐. 하늘같이 믿은 부처장이 갑자기 경질되는 바람에 전력투구 끝에 따낸 불하약속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알거지가 되다시피 한 것은 물론 공공의 신용에 매달렸다. 졸지에 운명이 갈리는 사업계에서의 흖고 흔한 사례주의 한「케이스」-. 허욕 앞에 공신력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사조가 번지는 반면 아직도 공신력을 사물시하고 원칙없이 편리할 대로 엎치락뒤치락 행사하는 구습은 도사리고 있는 셈.
주유종탄(주유종탄)과 주탄종유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유류「보일러」다 갈피못잡는 시민의 춤이 계속된 것은 모두 불신을 뿌리는 행정공신력 부재 탓.
『개인과 공공이 사회적 공신력을 잃을 때 살아갈 수가 없고 ls족이 국제적 공신력을 상실할 때 부강과 번영은 없다』『이제는 민이나 관이나 모두가 보증수표 약속과 생활만을 할 때도 됐다』고 모두들 말했다.(김형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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