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문화계 새 설계(1)현실 직시한 창자가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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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음악계>
새해, 1975년이 되었다. 광복30년이 되는 새해는「우리의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를 이룩하는 것이 문화계가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음악·문학·미술·무용·연극·영화 등 새해에 해야할 일과 1년 동안의 전망을 각분야별 3인의 정담으로 진단해 본다.
광복이후 지난 30년간 음악계는 다른 어느 문학계보다도 일견 화려한 발전을 거듭한 듯 보인다. 70년대에 들어「음악의 본고징」인 독일과「오스트리아」에서까지 절찬을 모으는 젊은 연주가들이 속속 출현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음악계는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듯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국제급의 연주 수준과는 달리 작곡 분야는 아직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교향악단은 질적으로 정비되지 않았고, 음악 교육의 방향은 개선될 움직임이 엿보이지 않는다.
음악계가 안고있는 이 문제들 중 75년에 가장 시급한 해결을 해하는 분야는 작곡부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작곡은 악계를「리드」하는 첨병의 위치에 있는데 현재 한국 작곡계는악계를「리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75년에는 바람직한 작곡 방향이 우선 설정되어야겠다. 실험과 작곡가들과 보수다 작곡가들이 올해는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며 작곡 활동을 전개할 것인가는 큰 관심거리인데 각파는 각기 지난 활동도 되돌아 봐야겠다.
창악회를 중심으로 한 실험파는 외국의 첨단적인 소재를 생경하게 사용했고 한국 작곡가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는『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는 구호아래 거의 동요적인 작곡을 했다는 비난을 각기 받아온 것이다. 그래서 흔히 실험파에게는 실현음악을 하는 이유가 과연 정통음악에 대한 도전이라는 필요성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외국에서 실험을 하니 우리도 하자는 식은 아닌가라는 야유가 쏟아진다.
반면 보수파에게는 아직껏 안익태의『「코리아」환상곡』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고 있지않은데 그간 활동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하는 공격이 가해진다.
75년에는 두파가 이런 공격에 대한 해명을 작품으로 제시해야 할 때다.
창작방향을 모색해서 설정했더라도 창작분야는 정부나 사회로부터의 지원과 모든 작곡가들의 반성없이는 발전하기 힘들다. 『8월에 열릴 광복 30주년 기념음악제가 현재 계획중인데 이런 축제와 의식에서 작곡분야가 제외되었다는 것은 곧바로 정부로부터의 창작 호응이 없다는 뜻』(이상만씨)이 아니냐는 말처럼 사실 해방이후 창작 분야는 거의 정부로부터 지원이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정부의 음악지원과 곁들여 75년은 7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문예진흥원의 지원방법을 재검토해야 할 시기이다.
지원방법은 지원자체보다도 일면. 더 중요한대 현재의 지원법은 작품의 질에 관계없이 작품수만 증가시키는 경향을 조장하는 것이다. 서울 음악제·한국 작곡가회 발표회 등에 작품당 일정 금액을 보조할 것이 아니라『작품 금고를 만드는 방법을 택해야겠다』(서우석 씨의말). 기존의 작품을 토대로 신작은 창작보조를 해줘 금고에 수시로 가입시키고 가입된 창작곡을 연주하는 연주가에게 지원을 해주는 이 방법은 창작계와 연주계를 이어주는 가교역할까지 겸할 수 있다.
또 창작을 국내 음악인들에게만 의뢰할 것이 아니라, 한국 음악을 다루는 외국 음악가들인「루·해리슨」「앨런·호바네스」혹은 한국2세 음악가들인「얼·킴」「도널드·서」우종갑씨 등에게 맡기는 방법도 고려해야겠다.
작곡가들이 반성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시대에 살면서 그동안 현실에 왜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험파 작곡가들은 현실에서 무엇을 작곡해야 마땅한가를 따지지 않고 새로운 것만 받아들이기 바빴고, 보수파는 가곡하나를 작곡하는 경우에도 소월의 시에서 맴돌았지 김수영의 시는 외면해 온 것이다. 진작 현실에 눈을 돌렸더라면 민족적 소재나 국악을 일찍부터 원용하여 지금처럼 양악과 국악이 격리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 않는가.
작곡분야와 달리 연주분야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단계에 이른 듯하다. 다만 국내 연주가의 경우, 아직「스타」를 기른는데 음악계나 청중 모두가 인색하다는 점, 연주가들이「레퍼터리」선정에 개선과 전문성을 결여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교향악단의 질 문제만이 심각하다. 국향과 시향이 매달 경기연주회를 근년에 이르러 갖고 있으나『음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평인 것이다.
나쁜 악기, 부족한 연습. 적절한 지휘자 부재 등으로 원인이 좁혀지나 그중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지휘자 문제다. 지휘자 수가 한정되어 있고 일단 한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결정되면 좀처럼 그 자리는 흔들리지 않으므로 지휘자들이 태만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임지휘자 제도가 우리의 실정에서 적절한 것인가, 오히려「팬」의식을 심어주어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지휘자를 자유 경쟁시키는 것이 좋지 않은가 등이 재검토돼야겠다.
회원제나 혹은 위문공연이 청중을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아닌가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내 교향악단이 너무 게을렀다는 것은 크게 반성할 점이다. 사정이 조금식 다르기는 하나, 현제명이 이끌던 고려 교향악단이 한달에 2회 경기공연을 가졌었고 「시카고」교향악단이 매주 4회 공연을 갖는다는 사실은 음미해 볼 만하다.
음악 교육이 그동안 잘못되어 왔다는 것은 현재「줄리어드」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이 60명이나 된다는 것,「갈라미안」교수에게 사사하는 학생만도 10명이라는 점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외국에서 공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런 풍조들이 사실 잘못된 풍조가 아니라는데 문제는 있다. 그동안의 한국 음악 교육은「유럽」식의 전문 음악학교(콩세르바톼르)제를 취하지 않고 음악 대학만 인정해 왔었는데 이제 그 결과가「줄리어드」유학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주가는 많아도 지휘자가 지나치게 없는 것도 지휘전공「코스」가 없는데 기인하며, 양 악과 국악의 합치가 그토록 힘든 것은 양악 전공자에게는 교과 과정에 국악「코스」가 마련되지 않은 때문은 아닐까.

<참석자>
▲박용구(음악평론·공간지 주간)
▲이상만(음악 평논가)
▲서우석(작곡가·서울대 음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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