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내불황의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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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3년은 본격적인 성장정책이 추구된 이래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비록 총량규모로는 올해의 실질성장률이 9%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수출·고용 생산활동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 경제가 내포하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취약점이 여지없이 노정되었던 한해였다. 이 같은 취약점의 발현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해방과 동란을 전후한 혼란기를 제외하고는 연율 40%를 넘는 「인플레」를 겪어보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그것도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점은 흔히 얘기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한 유형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체질의 구조적 결함을 더 크게 반영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 하다.
성장의 추진력을 맡고있는 수출만 해도 올해목표 45억「달러」는 무난히 달성될 것 같다는 정부추산에도 불구하고 가장 혹심한 불황을 겪고있는 부문은 다름 아닌 수출업체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수출구조가 상당한 문제점을 포괄하고있다는 얘기가 된다.
단군 이래의 호황이라는 73년의 경험에서 우리 경제의 각 주체들이 정견 없는 확장을 거듭할 때만해도 제동의 필요성이 일부에서 강조된 점을 우리는 기억하고있다.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반기 초부터 신용상내도액이 점차 하강추세에 접어들면서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고 원자재가 점차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는 과정에서 수출업계는 본격적인 경기침체를 맞게 되었다.
10월 말 현재 생산은 전산업 평균해서 전년 동기 대비 31·8% 밖에 늘지 않았으며 그나마 출하는 더욱 부진, 18·7% 증가에 그쳐 73년 동기의 30·2%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반면 재고는 73년 동기의 2·1% 감소에 비해 올해는 49·5%나 늘어나 불황국면의 심화를 단적으로 표현하고있다.
대한상의가 조사한 바로는 9월말 현재 7백50개 이상의 생산업체가 휴업 또는 폐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 가동중인 업체도 29·2%가 최소한 1개 품목 이상을 생산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의 생산중단 이유는 54·9%가 수출부진을 들고있으며 17·6%는 원가고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판매부진은 내수 부문에서도 현저하여 14·3%에 이르고 있다.
휴, 폐업에 따라 9월까지 직장을 잃은 종업원은 5만6천명에 달하고 현재 가동중인 업체에서도 조업 단축 등에 따라 최소한 1만9천명 이상이 고용기회를 잃고있다고 이 조사는 밝히고있다. 기업규모별로는 불황의 여파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외형 2억원 이상의 대기업은 종업원 감소가 5·3%에 불과한데 비해 중소기업은 21·5%에 이름으로써 4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고 매상고도 대기업이 34% 감소한데 비해 중소기업은 48%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정부는 당면불황이 내년 상반기를 고비로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 하나 세계경제여건이 반드시 낙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인플레」대책 위주에서 경기자극 우선으로 반전할 것 같은 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도 전반적인 기조는 반「인플레」정책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석유위기에 따른 각국의 국제수지압박이 지속되는 한 달라질 공산이 거의 없다고 본다면 세계경제는 당분간 자위균형체제에서 탈피하지 않을 것 같다.
전경련은 이 같은 세계경기추세를 고려, 내년의 우리경제는 「미소유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고 경기회복시기는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면 76년 하반기에 가서 겨우 회복단계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외조건을 고려한다면 당면한 정책방향은 단기적인 경기대책과는 별도로 자원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구조개편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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