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사고를 근절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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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감독원은 부실대출 등에 관한 문책으로서 시은행 부장급직원 26명을 징계토록 지시했다. 금융정상화다, 서정쇄신이다 하여 금융정화운동을 벌인지 몇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사고나 부실대출의 빈도는 줄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왜 금융의 정상화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며, 어찌하여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인과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제반시책이 금융계가 내포한 모순과 문제점들을 철저하게 타개치 못한 채 집행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압력대출의 배제·신용조사제의 도입 강화·감사기능의 강화·경비절감 등 조치가 금융정상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제도개혁이나 감사강화로 부실대출이나 사고가 방지되지 않는가, 그 숨은 이유나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금융의 정화 정상화에 있어 인적 요소를 중요시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본질문제에 대해 그동안의 시책은 너무나 관심을 쏟지 않았다는 반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마련되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거꾸로 제도의 허점만 찾게 되는 간교만이 무성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으로 말하는 유능한 인사보다는 금융을 정화할 열의와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우대한다는, 사람의 문제를 보다 비중 높게 다뤄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어느 기관, 단체를 막론하고 그 분위기와 기강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경영층임을 주목해야 한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경영층이 만의 일이라도 금융기관을 지배한다면, 내부의 불신관계를 해소할 수 없고, 그 때문에 모든 시책은 공전될 수밖에 없다.
또 간지가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실무체제를 지배하게 되어 외형과 실질은 날이 갈수록 상반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기강이 풀리게 되고 사고의 틈은 그만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감독방식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종래의 감독과 문책방식은 지나치게 지엽말절적인 것만을 건드렸기 때문에 오히려 책임회피와 무사안일주의를 조장한 경향조차 없지 않았다.
중복되는 감사·검사가 근소한 결함까지도 물고 늘어짐으로써 정상적인 업무처리과정에서 파생될 수도 있는 과실까지도 징계해온 것은 잘못이었다. 문책의 빈도가 높으면 오히려 문책에 둔감해지고 실효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책은 신중히 해야하는 한편, 고의성이나 중과실은 엄벌하는 절도가 아쉽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책을 기안자·실무자에게만 국한시키고,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함으로써 의사결정자들의 무사감을 조장하는 관행도 차제에 시정되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경영층에 대한 문책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사건이 일어나도 실무자들만 징계한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기껏해야 도의적인 인책으로 자리를 물러나는데 그쳤기 때문에 경영층은 뼈저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금융기관의 부실대출은 부실이 양성화 할 때까지 적어도 수년간은 필요하므로 책임소재가 분명치 못해서 시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초대출과 추가대출이 겹쳐서 누적되는 과정에서 언제부터 부실화되었다고 판정키 곤란한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상위층일수록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다.
그러한 허점을 역이용해서 부실화 할 것을 빤히 예상하면서도 몇사람의 이익을 위해 신규대출선을 끌어들이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금융계에는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컨대 금융기관에 내재된 본질적인 모순의 표현이 바로 최근 잇달아 노출되고 있는 각종 사고와 부실대출의 노출인 것이므로 이를 시정하려면 깊숙이 도사린 병폐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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