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빈민가 소녀가 와서 본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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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 사람들은 자원을 급격히 소비하다 보니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죠. 제가 꿈꾸는 지속가능한 도시는 어떤 자원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재활용 되는 도시입니다.”

 인도 소녀 바이데히 쿠마리(17·사진)가 영어로 또박또박 써내려 간 내용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주제로 삼성엔지니어링이 개최한 현지 에세이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지구환경포럼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의 첫 해외 나들이였다. 주인공을 포럼이 열린 지난 12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한국인에겐 다소 뻔해 보이는 내용의 에세이가 1등을 한 이유는 인도의 현실을 잘 꼬집었기 때문이다. 쿠마리가 쓴 에세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자원 낭비’, 곧 ‘쓰레기’였다. “학교 주변만 벗어나면 온통 쓰레기투성이예요.” 그가 살고 있는 인도 북부 노이다시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쓰레기를 길거리나 강가에 내다버리는 이들이 많단다. 그는 “카스트제도의 하위계층인 불가촉천민(달리트)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오랜 믿음 때문”이라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하지만 수북이 쌓인 쓰레기더미 위에서 아이들은 뛰어 놀고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강물에 누구나 몸을 담근다. 당연히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의사가 되기를 꿈꾼다. “인도엔 ‘쓰레기’ 때문에 피부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의사가 되어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특히 저처럼 가난한 집안 출신이면 제대로 된 치료는 더더욱 어렵거든요.”

 쿠마리는 자신이 ‘가난하다(poor family)’는 사실을 주저 없이 밝혔다. 그는 노이다시 외곽의 빈민가 출신이다. 자동차 운전사인 아버지가 벌어오는 100달러 남짓한 월급으로 여섯 식구가 생활해야 한다. 그는 영어 말하기와 작문을 제법 잘했는데 자선학교에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그가 앞장서서 학비 걱정 없이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자선학교 입학 허가서를 받아와 부모님에게 내밀었다. 인도는 아직까지 여성에게 교육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쿠마리는 “제가 사는 곳도 서울처럼 됐으면 좋겠다”며 “소음이 없고 깨끗한 거리가 부럽다”고 했다. 그는 이번 포럼에서 난생 처음 세계 각지의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지구 온난화로 사라져가는 인도네시아 산호초를 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포럼에 모인 청소년들의 고민은 달랐지만 각자 안고 있는 환경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들은 닮아 있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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